1. 새로운 나라 殷나라라고?
중국 역사를 처음 배울때 하는 말이 무엇인고 하니 '중국의 역대 왕조는 하-상-주...'로 시작되는 기본적인 개설 설명이다. 그런데, 殷나라가 새로운 나라인가 의심해봐야 한다. 은나라는 전혀 새로운 나라가 아니다. 은나라는 옛날 옛적부터 있어왔던 나라중의 하나이고, 하나라가 쇠망하자 그 뒤를 이어서 중국을 지배한 나라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나라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들은 흔히 알기를 통일신라 망하고 고려, 고려 망하고 조선이라는 식의 역사를 배워와서 다른 나라의 등장은 '느닷없는 새로운 나라의 등장'으로 인식하는데 상고시대의 나라를 그렇게 인식하면 안된다.
契長而佐禹治水有功。帝舜乃命契曰...封于商,賜姓子氏。契興於唐、虞、大禹之際
설 (은나라 시조) 은 자라서 우를 도와 치수에 공을 세웠다. 임금 순은 이에 설에게 명을 내려 말하길...상에 봉하고 자씨 성을 하사하였다. 설은 당1),우2), 대우3)의 시기에 흥성하였다.
1) 당은 제요도당을 말하며 우리가 흔히 요임금이라고 말한다.
2) 우는 제순유우를 말하며 우리가 흔히 순임금이라고 말한다.
3) 대우는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을 말한다.
즉, 은나라는 요임금부터 존재하였고 우를 도와 치수까지 한 설이라는 인물이 세운 나라다. 대개 우리는 은나라라고 부르는데 이는 대개의 사서들에서 은이라고 부르기에 부르지만 은이라는 이름은 책봉받은 상나라의 수도 은을 지칭해서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은이 아니고 상이다라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사기 조차도 본기에 은본기라고 하고 있으니 은, 상 둘다 맞는 말이다.
다시 돌아와서 은나라는 순임금이 설에게 상에 책봉했다고 하고, 요,순,우임금 시절에 흥성했다고 하였으므로 이를 해석하자면 요임금 시절에는 설 가문으로 흥성하였고 순임금 시절에 상지를 책봉받아 제후국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은나라 수백개의 제후국 중의 한 나라였던 은나라가 어떻게 하나라의 뒤를 이어 중원을 제패할 수 있었을까?
2. 이윤을 얻은 탕왕
중국사에서 개국의 이야기를 듣자면 언제나 명 콤비가 등장한다. 아니 굳이 중국사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역사를 들추어보았을때 개국함에 있어서 왕과 더불어서 언제나 명콤비가 등장을 하는데 이성계하면 정도전이 떠오르고, 유비하면 제갈량이 떠오르듯이 탕왕 하면 이윤이라는 이가 연관 검색어 뜨듯이 동시에 머리에 아른거린다. 오죽하면 桀之亡 湯之興 在伊尹也라고 하여 걸왕이 망하고 탕왕이 흥한 것은 이윤에게 있다라는 말까지 있겠는가. 이윤이 탕왕에게 등용된 것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1] 농부 이윤
이윤은 은나라의 농부였는데 마음가짐이 의와 도가 아니면 천하를 준다고 해도 받지 않는 인물이라고 명성이 자자하였다. 이에 탕왕이 그를 다섯 번이나 부르니 그제서야 임관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거 왠지 좀 그렇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음식'이야기가 등장을 하지 않는다. 훗날에 삼방순욱(세번 순욱을 초빙하다), 삼박중달(세번 사마의를 협박하다) , 삼고초려(세번 초가집을 찾아가다)의 이야기처럼 여러번 찾아간 탕왕의 인재 등용 방법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 이야기도 사기에 나오기는 하지만 이것을 증거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
或曰 伊尹處士,湯使人聘迎之,五反然後肯往從湯,言素王及九主之事
이윤은 처사로서 탕이 사람을 보내어 초빙하고자 하여 다섯번이나 거절당한 후에야 탕을 가서 따랐으며 옛 제왕과 9명의 군주에 관한 일을 이야기했다.
혹자가 말하기를 아마도 처사라는 것을 농사꾼으로 예를 든 것 같은데 이도 맞지 않거니와 이야기가 너무 간소하다. 그냥 떠도는 이야기를 사기에서 '혹자가'라는 말을 붙여서 이런 말도 있다더라라는 이야기를 실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 노비 이윤
이것이 사서에도 나오고 짜여진 이야기가 맞아 떨어져 가장 믿을만하다. 믿을만하지 확실하지는 않다.
負鼎俎,以滋味說湯,致於王道
솥과 도마를 지고 탕에게 음식의 맛을 이야기를 하면서 왕도를 행하게 했다.
사기의 이 이야기를 가지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 듯이 '이윤은 요리사'라고 생각히기도 하지만 이윤은 요리사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 단지 요리사에 불과할뿐인데 요리로써 왕도를 시행하게 할 정도면 이는 적어도 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1설에서 말한 처사로서 탕왕에게 왕도를 이야기한 것이 더 어울린다. 그럼 왜 이윤이 이렇게 되었는지 사기를 살펴봐야 한다.
伊尹名阿衡。阿衡欲奸湯而無由,乃為有莘氏媵臣.
이윤의 이름은 아형이다. 아형은 탕왕을 만나고자 헀으나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다. 이에 유신씨의 잉신(1)이 되었다.
(1) 잉신은 귀족 집안의 여자가 시집갈때 따라가는 남자 노복을 일컫는 말이다.
사기의 이야기와 다른 여러 사서의 내용과 신화를 취합하면 이윤의 어머니가 이윤을 잉태하고 있을때 꿈을 꿨는데 '이수(伊水;이수가에 살아서 이름을 이윤이라고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에 절구가 떠내려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동쪽으로 달리되 뒤를 돌아보지 마라'라고 했다. 잠에서 깬 그녀가 이수가에 갔는데 정말로 절구가 떠내려 오는 것이라 이에 뒤도 보지 않고 동쪽으로 달렸다. 한참을 달린 그녀는 이제는 되었겠지 하고 뒤를 돌아보니 마을은 홍수에 잠겨버렸고 그녀는 순식간에 '뽕나무'가 되어버렸다. 마침 뽕을 따러 온 여인이 뽕나무 안에 아기가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유신씨의 왕에게 바쳤다. 여기서 '공상(空桑;뽕나무 속이 비었다)'이라는 지명이 유래한 것이다. 유신씨 왕도 이를 이상하게 여겨 이윤에게 요리와 학문을 가르쳤다. 이윤은 탕왕이 성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만나고 싶었는데 만날 방도가 없었다. 마침 탕왕이 유신씨국을 지나다가 유신씨 딸이 이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례를 하기로 했다. 이윤은 이 소식을 듣고 유신씨 딸이 혼수로 가져가는 남자 노복을 자청하고 그래서 탕왕을 만나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 이윤과 탕왕의 만남 스토리가 된다.
3. 탕왕이 하나라를 정벌하다.
탕왕은 이윤을 얻고 나서 하나라로 보낸다. 아마도 하나라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파견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윤은 하나라로 가지만 이미 미래가 없는 하나라를 보고는 곧 탕에게로 돌아온다. 이윤의 이야기를 들은 탕왕은 하나라의 폭정에 걱정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차에 걸왕의 폭정을 간언하던 관용봉이란 신하가 참수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탕왕은 그 소식을 듣고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는데 또 그것이 걸왕의 귀에 들어가 - 아마도 신생으로 강성해지던 제후국이었으니 하나라에서 그러한 나라를 보고하는 신하를 파견했을 수 있다 - 탕왕은 '하대'라는 곳에 갖히게 된다. 이에 이윤은 탕왕을 구하기 위해서 갖은 금은보화와 특산품을 걸왕에게 보내어 간신히 구해낸다. 탕왕은 이때부터 하나라를 멸망시키고자 마음을 잡게 된다.
그러던 차에 은나라로서는 선수를 빼앗기는 일이 발생한다. 똑같이 하나라 걸왕의 폭정에 불만을 가지던 곤오씨 국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탕으로서는 선수를 빼앗겼으니 자신의 하나라 정벌에 대한 꿈이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윤은 이러한 탕왕에게 곤오를 쳐서 아직은 천자국인 하나라의 신하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므로써 명분을 얻는다. 은나라는 곧바로 병사를 일으켜서 반란진압을 목적으로 곤오씨국을 쳐들어가고 탕왕도 스스로 도끼를 휘두르며 직접 싸운 덕에 곤오씨국의 반란은 진압이 된다. 하지만 본래가 하나라 정벌을 꿈꾸던 탕왕인데 이미 병사를 일으켰는데 다시 되물릴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에 탕왕은 각 제후국들에게 탕왕의 포부와 걸왕의 폭정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라 정벌을 천명한다. 걸은 탕왕의 군대를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 버린다. 탕왕은 곧바로 걸왕의 충성스러운 제후국인 삼종국을 정벌하므로써 하나라를 평정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전 제후국에 알려서 하나라가 망하고 탕이 일어났다고 천명하니 모두 따랐다고 한다. 그 이후로 하나라 초기와 같은 제후국의 반란의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탕왕이 정치를 잘했던가 걸왕의 폭정이 지긋지긋했던가 하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4. 이윤? 이지? 아형?
이윤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면 브리태니커 사전에서는 이름은 '이'이고 '윤'은 관직명이다. 일설에는 지(摯)라는 이름도 있다. 라고 기재해 놓고 있다. 사마천은 앞에서 살펴봤듯이 이윤의 이름은 아형이다라고 기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이설이 꽤 많은데 이를 살펴보면
索隱孫子兵書:「伊尹名摯.」
사기색은 손자병법서에 [이윤의 이름은 지다]
孔安國亦曰「伊摯」.然解者以阿衡為官名.按:阿,倚也,衡,平也.言依倚而取平.皆伊尹之官號,非名也.
공안국 역시 말하길 [이지]이며 해석하자면 아형은 관직명이다라고 하여. 阿은 의지하다이고 衡은 고름이니 말하자면 의지하여 고르게 하는 것이다. 모두 이윤의 관직 이름이지 이름은 아니다.
皇甫謐曰:「伊尹,力牧之後,生於空桑.」
황보밀 말히길 [이윤은 역목의 후손이며 공상에서 태어났다]
** 바로 여기의 공상이라는 지명때문에 '이윤은 동이족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바다. 한단고기에서는 유망을 도와 소호를 물리치고 그리고나서 유망마저 멸망시키고 치우가 제위에 오른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 이윤을 동이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뭐 이야기하자면 이윤은 역목의 후예이고 역목은 황제헌원의 7현중의 한명이니 이윤을 동이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말마따나 이 말이 맞다고 한다면 이윤의 선조인 역목도 동이족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동이족을 배신하고 황제헌원의 편에 선 배신자라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이윤도 배신자의 자손이다. 그런 이가 동이족인 것이 뭐 그리 자랑스러운가? 아니면 선조는 상관없이 공상에 태어났으니 동이족이라는 말인가?
브리태니커에서처럼 이윤의 윤은 관직명이다라는 말은 찾을 수가 없다. 아형이 관직명이라는 말은 공안국이 한 말이고, 이윤의 이름이 지라는 것은 사기색은에서 주해를 단 손자병법서의 말이다. 뭐 솔직히 이윤은 하말은초의 사람이니 사기를 지을때나 혹은 손자병법서를 지을때가되면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이고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구전'을 통해서 기록하거나 주석을 단 것이니 이말, 저말이 나오는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은나라만 하더라도 이야기가 중구난방이 되는데 은나라 말기와 주나라로 진입하면 이야기가 확립이 되는 것이다.
5. 지도 이야기
지로를 보면 보라색으로 된 곳이 은의 영지가 된다. 은의 영지라고는 하지만 하나라때부터의 제후국까지 모두 포함된 강역이라 모두 은나라가 다스렸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고대의 국가 권력이란 것이 대강역을 거느릴 정도로 체계가 확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왕권이 강한것도 아니므로 지도는 말 그대로 강역일뿐이지 영향력이 미치는 곳은 아니다.
지도의 빨간 점은 은의 수도를 말한다. 그렇다고 은의 수도가 7개였다는 것이 아니라 수도를 7번 옮겨다닌 것을 말한다. 사기에서는 自契至湯八遷。湯始居亳 설에서 탕에 이르기까지 8번 도읍지를 옮겼다. 탕이 비로소 박에 거하였다 라는 기록을 살펴보건데 8번이 되어야 하는데 7번인 이유는 박으로 도읍지를 한 것은 선왕 제곡을 좇아서 했다고 한 것이니 박은 제곡과 탕왕 시대의 도읍지로써 같은 곳이니 7곳이 맞다.
그럼, 왜 이렇게 도읍지를 많이 옮겨 다녔을까? 지도를 보면 알지만 황하 주변이 도읍지다. 물론 저 황하 물길은 지금의 황하 물길이지 고대의 황하 물길이 저렇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알 수 없다. 황하는 모든 사서에서 살펴보면 언제나 범람하고, 물길이 바뀌고 홍수가 나고 해서 없던 땅이 생기고 어제까지 땅이었던 곳이 사라지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하나라 우왕은 치수를 잘하여 황제가 되지 않았던가. 이를 살펴보면 고대에 치수는 언제나 고민거리였고 이를 막을 과학적 발전도 없는 상태이니 황하가 범람하면 도읍을 옮겨다녀야만 했던 것이다. 홍수때문에 도읍을 7번이나 옮긴 은나라를 보면 당시 인간과 자연의 관계란 일방적으로 자연에게 당하는 고대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
Written by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