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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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신라 - 유목민족의 후예임을 드러내다???

오늘 선덕여왕을 보니 김유신과 알천랑이 비재 2번째 문제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신라는 북방 유목민족이 남하하여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래서 이방인인 혁거세 거서간을 받아들여 옹립하여 왕을 만들었다.


이는 전형적인 '신라 = 북방 유목민족설'을 받아들인 결정적인 대사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도 있고'라고 하여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갔지만

얼마전에 문무왕릉비에 나왔고 '역사 스페셜'에서도 방송을 했으니

그것을 '신라의 선조 - 흉노족 김알지'로 몰고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자, 그럼 金氏는 김알지가 최초인가? 삼국사기에서 등장하는 성씨일뿐이다.

삼국사기는 1145년에 지어진 사서이다. 거기에 김알지의 성씨가 등장한다. 김씨의 시조인 셈이다.

그런데, 삼국사기 이전의 사서가 우리나라에서는 없으니 중국측 사료를 뒤져봐야 하는데

바로 北濟書 신라편에 金眞興이란 구절이 최초로 등장한다.

우니나라 왕의 성씨가 최초로 사서에 기록된 것이다. 자 북제서는 언제 쓰여졌는가?

북제서는 636년에 지어졌다. 자그마치 500여년 전의 사서에 등장한 것이다. 삼국사기 보다는 신빙성이 있다.

그 전에 신라가 성씨를 사용했는지 안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최초로 등장한 성씨임에는 확실하다.

그런데 김알지가 선조라니, 그리고 김알지가 흉노족의 후예라느니 하는 것은 무슨 말인가?

북방 유목민족 후예설은 김알지와 김수로 모두에게 통용되는 단어이다.

그런데 '한권으로 읽는 신라왕조 실록'을 지은 박영규는 '수서'의 기록을 인용하여

김알지는 백제의 후손,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한의 후예로서 마한 부흥운동을 꾀한 마한 왕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를 한다.

뭐 박영규야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 실록'에서 어처구니 없는 지도를 들이민 '대책없는 자자'이므로 그의 기록은 그저 잡설에 불과할 수 있다. - 수서를 찾아봐야 하는데 지금 바빠서 -

반면에 '한국 7대 불가사의'를 지은 이종호는 대놓고 '신라 김알지와 이후 미추이사금에서부터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저 문무왕 비석에 적힌 '투후의 후예'라는 단어로 신라의 김씨 세습 왕조를 흉노족의 후예에서

확대하여 '통일신라'이후의 한반도를 '흉노족의 후예'로 보는 것은 비약이 심해도 한 참 심하다.

뭐 철기를 잘 다루었다고 하여 스키타이, 알타이 뭐 말들이 많은데

한마디로 설레발 치는 것이다.

내가 '한국사'는 잘 모르지만 - 중국 고대사 전공이라 -

문맥만 가지고 모든 것을 '실체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Written by 나그네

by 나그네 | 2009/09/09 00:10 | ◈일상에서의생각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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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9/09 04:43
1. 이종호야 남의 책 배끼기부터-위클리 월드 뉴스부터 공상과학 대전까지 - "극적으로 이야기 구성"하느라고 사실관계를 팔아먹기로 악명높습니다.(공상과학 대전 배낀 책 출판했다고 조선일보에서 빨아줄정도로 언플도 잘하는 편이구요.) 이 사람은 뭐 흉노족 엉덩이에도 몽골반점이 있다-> 흉노는 한민족이다 드립도 할 정도니까요.

2 오래전에 모 시사정론지에서는 관구검의 위나라침공때 유인부대로 동원된 인원의 생존자가 신라로 진입해서 "김"씨 가문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버젓히 실어주었는데요. 뭐

ps: 이종호 최고의 압박이 니콜라이 2세(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황태자 알렉세이가 (아나스타샤가 아니고) 살아서 소비에뜨 시민으로 살면서 군에도 들어가고 자손을 남겼다.는 겁니다. 무려 "당사자 인터뷰"기사까지 그대로 실었지요.(혈우병은 그냥 나았답니다. --;;) 이게 출처가 위클리 월드뉴스라서 2쇄부터는 이 부분이 빠졌더군요.

Commented by good at 2009/09/11 06:38
이분 또 주특기 나오셨네. "오래전에 모 시사정론지" 이런 식으로 출처 모호하게 하고 비난하는데는 선수시라니까. "관구검의 위나라침공때"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했나? "위나라"를 침공했나? 도대체 무슨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오래전에 모 시사정론지"에 실린 내용이 뭐예요 도대체?
或稱魏將毋丘儉討高麗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有留者, 遂爲新羅, 亦曰斯盧(北史)
魏將毌丘儉討高麗, 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留[校勘 072]者遂爲新羅焉(隋書)
북사 수서도 안 보고 마음대로 주유천하를 하시니 님의 지식을 칭탄할 수 밖에.
Commented by good at 2009/09/11 06:43
"극적으로 이야기 구성하느라고 사실관계를 팔아먹"는게 정작 누군지 모르더라.
Commented by dhunter at 2009/09/09 08:43
사실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모든 농경민족의 과거는 유목민족이었을테니까 가져다 대려면 못할건 없을겁니다.

... 그런데 왜 다들 유목민족을 못해서 난리인지는 참... 재미있는 일이죠.
Commented by 빛의화살 at 2009/09/09 09:06
징기스칸이랑 연결시키려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전체적인 이미지가 농경민족 바르는 유목민족이니 짱쎄다는 것의 상징이잖아요.
Commented by 一道安士 at 2009/10/11 07:34
저는 신라의 성씨는 법흥왕이후에 정립된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6세기 전반 이전에 신라에서 발견된 금석문 중에 왕족인 박석김의 성씨가 기록된 고고학적 유물이 없다는 것이 하나의 근거입니다.

즉 법흥왕 이후에 한자로 성씨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선조를 추적하여 동일계통이라고 판단되면 동일성씨를 주었다고 봅니다. 이때 신라왕족이 김으로 성을 정한 이유는 자신들의 시조인 김알지가 위로 가면 김일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라와 진한의 관계는 정복과 피정복의 역사입니다. 박석김은 모두 외부 이주인들로서 진한을 정복한 집단들입니다. 신라 뿐만 아니고 백제도 이주민들의 계속적인 유입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흉노계와 연결된 김씨와 관련된 이민은 신라에 3차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차이민: 1세기 김알지 집단
- 전한-후한 교체기에 '신' 나라 건국에 기여했던 구 흉노계 집단이 후한의 탄압을 피하여 한반도로 이주합니다.

2차이민: 3세기 미추왕 집단
- 여기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므로 확실한데, 3세기 중반 관구검의 신라 침공에 동원되었던 구 흉노계 병력이 신라로 이주합니다. 이들이 백제와 신라의 대결구도에서 신라의 용병으로 참전하다 마침내 정권을 잡으니 미추이사금의 출현입니다.

3차이민: 4세기 내물왕 집단
- 여기도 신라 당사자의 기록인 신라본기가 기록하고 있으니 더 이상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4세기 중반에 전연의 고구려 침공에 동원되었던 구 흉노계 병력이 신라로 이주합니다. 이들이 왜국(임나가야)의 담로국이었던 신라를 독립시키고 왕이 되니 내물이사금입니다.

이 중에 백제와 관련하여 3차이민이 가장 중요한데 근초고왕은 자신들의 종구국이었던 왜국을 격파하고 왜국의 담로국에서 해방된 신라와 손잡고 자립위왕합니다. 백제왕을 칭한다는 뜻입니다. 설명이 길어져 이하 생략하는데 백제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Commented by 一道安士 at 2009/10/11 07:49
오늘날 경주일원에서 보이는 적석목곽분과 그 안의 유물을 가져온 집단은 3차이민 그룹인 내물왕 집단입니다.

1차이민은 대규모였으나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 별다른 유물을 남기지 못햇고, 2차이민 집단은 대부분이 가야로 가서 정착하고 소수만 신라에 남았습니다. 소위 3세기 후반에 낙동강유역에 갑자기 등장하는 북방계 유물의 정체지요.

대규모이고 마지막으로 신라를 정복하고 왕권을 장악한 것이 3차이민 집단인데, 이들이 150년 후 법흥왕 무렵에 피정복인이던 신라인과 완전동화되었으며, 다시 100여년이 지나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하고 삼한통일을 이룹니다. 결국 이들이 이후 한국사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여는 우리에게 무엇이냐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부여 역시 한국사의 또 다른 축입니다. 중국 사서를 보면 5세기에 백제지역에 부여씨가 대거 등장하는데 이들의 근거지가 주로 금강유역과 영산강유역인 구 마한지역입니다.

즉 부여씨는 마한의 주축세력으로서 마한 자체가 북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부여족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마한은 즉 고구려'라는 최치원의 증언은 일리가 있습니다. 둘다 부여족인 것이지요.

그러면 백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4-5세기를 기준으로 다르다고 봅니다. 여기도 설명이 깁니다만 간력히 요약하면 3-4세기의 삼국사기의 백제는 말갈족입니다. 한마디로 고구려의 속민입니다. 반면에 5세기 이후의 백제는 마한이므로 부여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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