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12일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 실록]의 지도 한장
고구려의 최대 판도를 이룬 왕은? 초록불 형님댁에서 살짝쿵 업어온 글.
고구려 글인데 왠 카테고리가 '삼국지 주절잡설'이지라고 여기실텐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출처 ; 초록불 형님 얼음집에서 발췌
이 지도는 AD125년 경의 지도라고 버젖이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 시대가 고구려 태조왕 시절이라는군요. 태조왕은 고구려 6대 왕이지요. 지도 보면 참 대단합니다. 중국 동해안 지역의 영토를 위로 올리면 광개토 대왕 혹은 문자왕 시절이랑 비슷할 것 같긴 한데 뭐 아닌가 보군요.
자, 그럼 중국은 AD125년이면 어느 시대인가요? 광무제 유수가 25년에 나라를 세워서 220년에 멸망을 한 후한의 시기입니다.
125년이면 어느 왕인가 살펴보니 한나라 순제때로군요. 자, 그럼 지도를 살펴보도록 합니다.

자, 동한 강역도입니다. 고구려 영토까지 한의 영토가 침범한 것은 아무래도 한사군의 영향력이 큰 탓이겠지요.
자, 한권으로의 지도를 보건대 그렇다면 삼국시대에도 저런 영토를 가지고 있었어야 할 겁니다.

흠, 보면 태조왕대의 지역은 모조리 다 사라지고 없군요. 겨우 80년밖에 안되는데 말이지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저 위의 지도 125년은 태조왕 마지막 해입니다. 자 볼까요.
태조왕의 뒤를 이어 동생 차대왕이 즉위를 합니다. 건장하고 용감무쌍했으나 인자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명림답부에 의해 피살을 당합니다. 주로 나라안에서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데 힘을 썼습니다. 밖에 의지하지는 않았지요.
명림답부에 의해 차대왕이 죽고 오른 이가 바로 신대왕이지요. 대외적으로는 168년에 현도군이 공격하자 항복을 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현도군을 도와 부산적을 토벌하는 행동을 하지요. 172년 한나라가 쳐들어 오나 명림답부의 작전으로 크게 승리를 합니다. 그저 영토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한권으로..'의 지도를 봐서는 현도군에 항복할 정도의 영토는 아니어 보이는데....
그 뒤를 이어 고국천왕이 오릅니다. 고국천왕은 알다시피 을파소를 등용하여 내부의 반란을 진압하고 중앙집권을 이룩한 왕이지요. 굳이 국외에까지 신경쓰고 자시고할 여력은 없습니다. 내부를 다스리고 진압하고 정리하는 나라는 국외는 버려두기에 이릅니다. 아, 그럼 '한권으로...'는 고국천왕대에 이르러 저 영토를 다 잃게되는건가요.
고국천왕이 죽고 아들이 없어 동생이 오르니 산상왕인데 이에 산상왕의 형이 자신이 되야한다고 반란을 일으키죠. 뭐 실패하지만 요동으로 가서 공손도에게서 군사를 빌려 다시 쳐들어오나 패하고 맙니다. 뭐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208년의 후녀 사건을 제하고는 없습니다. 이때의 중국은 전형적인 군벌난립의 시기이지요. 적벽대전이 일어난 해입니다. 북방에 신경쓸 때가 아니지요. 산상왕은 그렇게 227년에 세상을 뜹니다.
각 지도들과 중국의 역사와 더불어 고구려사를 살펴보면 전혀 매치가 되는 부분이 없습니다. '한권으로...'의 저 지도는 정말 이상한 지도입니다.
Written by 나그네
# by | 2009/08/12 00:25 | ◈삼국지주절잡설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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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약탈(?) 하러 기마부대가 살짝 말 발굽 찍힌 곳까지 다 고구려 영토... 이런 식으로 해서 나온 지도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재 우리의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국사교과서는 일제시대에 의해 왜곡된 역사 입니다.
아래 동한의 지도를 보면 고구려가 없어요.
요동과 한반도 북부까지 東漢의 세력이 미쳤다는 건데요.
얼토당토 않은 지도 입니다.
원래 중국의 동해안 지방은 백제의 영토 였습니다.
그리고 그 북쪽의 하북성은 고구려의 세력이 미쳤던 지역 이고요.
뭘 아나?
전성기라고 해봐야 1대 光武帝, 2대 明帝, 3대 章帝의 시대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허잘것 없는 역사지요.
沖帝와 質帝는 갓난 아기의 신분으로 제위에 올랐고,桓帝와 靈帝때는 宦官과 外戚들의 전횡,黃巾賊의 亂으로 인해 나라가 개판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