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23일
[6] 하나라의 쇠락 ? - 공갑제(孔甲帝)

1. 왜? 공갑제인가?
공갑제라고 검색을 하면 한결같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공갑제가 즉위하니 하나라의 국운이 이때부터 다하였다' 라거나 '사치와 향락이 극심을 이루었다'라는 말들을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런데 이말 너무나도 많이 나온다. 가장 최근에 나온 이문열의 '초한지'에도 하나라는 공갑제로부터 쇠락한다라고 기재하고 있다. 왜? 공갑제부터인가?
2. 용? 왠 용?
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상한 이야기가 나온다.
夏後氏德衰,諸侯畔之。
하후씨의 덕이 쇠락하여 제후들이 배반하였다.
그래 이거야 상관없다. 이 말만 있고 제후들이 배반하면 뭔 상관이랴. 그러니 사람들이 공갑제로부터 하후씨의 국운이 쇠락했다고 보는 것은 이상이 없다. 그런데 그 다음 문장이 문제다.
天降龍二,有雌雄,孔甲不能食,未得豢龍氏。
하늘이 용 두마리를 내렸는데 암컷과 수컷이었다. 공갑제는 먹을 줄 몰랐고, 환룡씨을 아직 얻지 못했다.
하후씨의 덕이 쇠했는데 왜 '용 두마리'가 내리는가. 이게 무슨 말인가. 그것도 암수 두마리다. 그런데 이를 먹으려고 했다는 공갑제도 특이하고 용을 기르는 부족인 환룡씨의 존재도 어이없다. 덕이 쇠한 나라에 왠 용의 등장인가?
중국에서 용은 어떤 존재인가? 원래는 비의 신이었던 중국의 용은 하늘의 선행과 풍요를 상징한다. 따라서 용이 내렸다는 것은 비가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의 용은 어떤 의미인가? 황제다. 유방의 어머니가 용과 교접하여 왕을 낳았다는 '龍子'신화는 중국인이 용의 자손이라는 옛적부터의 전설을 '황제'로 숭상하여 기록한 것이다.
그럼, 저 기록을 보면 '자식'을 얻었다고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들과 딸을 얻었는데 환룡씨가 없었다는 것은 태자의 사부로 삼을 인물이 없었다는 것으로 해석을 해야하는 것인가? 그런데 만약 내 추측대로 龍을 자식으로 생각한다면 기괴한 이야기가 또 하나 등장한다.
龍一雌死,以食夏後。
암용이 죽자 하후씨가 먹었다.
그렇다면 딸이 죽고 그 딸이 죽은 것을 먹었다는 것이 된다. 이 무슨 식인문화인가? 그런데 이것이 능히 그럴만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은 공갑제의 특기할만한 특성떄문이기도 한다.
帝孔甲立,好方鬼神,事淫亂。
제위에 공갑이 올랐는데 귀신을 좋아하고 행동이 음란했다.
이는 대만의 학자 황문웅이 쓴 '중국의 식인문화' 내용과 연결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물론 황문웅이라는 이에 대한 거부감과 - 대만의 친일파 - 그가 인용한 자료들 중에서 '식인'이랄 수 없는것을 모두 '인육'으로 설명을 헀다는 문제도 있지만 적어도 고대에는 '기근'과 '형벌', '천재지변, '전쟁'등으로 인육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앞의 기록과 문제되는 부분이 또 하나 나오는것이 맨처음에 용이 나왔는데 '먹을 줄 몰랐다'가 죽으니까 '먹었다'라는 것은 무슨 일인가. 食에는 먹다, 밥의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르다, 양육하다, 먹이다의 뜻도 있다. 즉, 자타동사가 가능하며 기르고 양육하는 의미 또한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孔甲不能食은 공갑제는 기를 줄 몰랐고 / 공갑제는 양육할줄 몰랐다라는 말이 된다. 물론 암용이 죽자 하후씨가 먹었다는 다른 해석을 넣으면 이상하다. 그렇다면 공갑제는 딸이 죽자 먹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고대의 '식인문화'는 다양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황제가 딸을 먹었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살펴보자.
3. 재해석
공갑제가 음란함을 일삼았다고하는데 이것은 어떤 근거가 없다. 귀신에게 제사 지낸 것을 즐기는데 이것은 사치를 했다고 평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제후들이 반란을 했다는 부분도 증거는 없는데 나중의 공갑제 기사를 살펴보면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용 두마리를 얻었다는 것을 '자식'으로 해석을 해서 1남 1녀를 낳은 것인데 이들을 기를 '스승'이 없었음을 암시한다고 본다. 그러다가 환룡씨로부터 용 기르는 법을 배운 유루라는 이에게서 용 길들이는 법을 배워 공갑제를 섬겼다고 한다. 이는 대대로 태자의 스승을 맡았던 가문이 아닌 다른 이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루씨는 어룡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까지 한다.
대대로 태자의 스승이었던 가문이라면 이는 '세력'이 견고한 제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태자의 스승이라면 태자가 황제가 되고나서도 여전히 '스승'으로서의 역할 혹은 힘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공갑제는 태자의 교육을 환룡씨로부터 빼앗아 유루라는 새로운 세력에게 맡기면서 권세를 이전시킨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딸이 죽고나서 공갑제가 먹었다는 기록인데 이를 딸에 대한 애정의 척도라거나 당시 고대의 풍속으로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제후가 황제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먹은 기록은 있지만 그 외에 자식을 먹은 기록은 극히 없다. 너무 사랑하여 딸이 죽자 그 시체의 일부를 씹어먹은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후에 유루에게 용을 구해오라고 하자 유루가 도망쳤다고 하는데 이는 공갑제가 딸의 죽음으로 반미치광이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용을 구해오라고 한 것은 '자식 낳을 방도를 찾으라' 뭐 그런 것 아닐까. 더구나 처음에 용 두마리 이야기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공갑제가 자식을 잘 낳을 수 있는 능력은 아닌 것 같다. 1남 1녀에 딸을 잃고 더구나 딸을 잃자 이에 유루에게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방도를 알아오라고 부추긴 것 같다. 훗날의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얻기 위해 여기저기에 사자를 파견한 것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태자의 스승이었던 유루가 도망가고 공갑제가 반미치광이가 되자 제후국들이 슬슬 이반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기 어느 곳에서도 공갑제가 음란했다는 기록은 없다. 귀신을 좋아하고 제사를 즐겼으니 사치를 한 것은 맞는 것 같고 자식을 낳기 힘든데 자식을 낳은 와중에 딸이 죽자 반미치광이가 되어 제후들이 떠나간 것이다. 음란함이라? 무엇이 음란하단 것인가.
공갑제 초기부터 제후가 이반했던 것은 아니다. 공갑제 말기에 제후가 이반하기 시작하여 하나라가 쇠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나라가 공갑제로부터 쇠락한 것은 맞지만 전후사정은 공갑제 말기부터라고 정정해야 할 듯 하다. 그리고 공갑제의 손자 발에 이르러 멸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Written by 나그네
# by | 2008/06/23 17:40 | ◈중국역사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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