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서의 처음


처음이라는 것. 내 기억에서의 처음이라는 것. 그것을 잊으면서 우리는 '처음'을 새로이 경험하기 위해서 혹은 '처음'이 없었던 것 처럼 세상을 정신없이 잊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처음'이라는 기억 잊으며 사는 건지, 잊혀진 기억인지, 잃어버린 것인지 머릿속에서 새까맣게 잊으며 살다가 어렴풋이 오늘 그 '처음'이라는 기억이 떠오른다. 내 기억에서의 처음은 뭐지?

 

1. 생후 첫 기억

 

언제 가장 먼저 첫 기억이 나는 걸까? 물론 나면서 부터 기억을 할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듯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로 흐려져가 아예 '없던 기억'이 되어버린다. 점차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무수한 기억의 세월속에서 처음으로 했던 기억은 점차로 기억의 나이가 늦춰져 간다. 분명 난 5살때 3살의 기억을 했을텐데 말이지.

 

내 첫기억은 3살이다. 물론 평범한 기억이라면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겠지만 내 생사를 오고가는 경험덕분에 기억을 한다. 동전을 가지고 놀다가 목으로 넘어갔는데 그것이 기도와 식도의 중간에 막혀버린 것이지. 기도로 넘어갔으면 그대로 죽는 것이라 다행이지만 기도의 절반을 막아선 탓에 거의 각혈을 하며 뒤집어 졌다. 병원에 가서도 '마취'를 하지 않고 드릴같은 것을 목 안으로 넣어서 동전을 뚫어 걷어낸 것을 기억한다. 물론 이 기억의 잘못은 '마취'를 하지 않았다라는 것인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마취'를 했다는 것이지. 물론 부분 마취라는 한계성을 지녔지만. 3살의 아이에게 전신 마취는 거의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 게다가 '마취'를 하지 않았다고 기억을 하는 것은 목으로 드릴을 넣는데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 엉엉 운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억 이후로 다시 기억은 끊겼다. 언제 다시 기억이 나는지 모르지만 5살인가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 연탄불에 숟가락을 지져서 내 허벅지를 찍어 눌러 화상입은 기억은 전혀 없다는 것. 기억은 때로 '확실하지 않다'

 

2. 첫 매

 

물론 나면서 맞기는 했을 것이다. 엉덩이를 때려서 울리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전혀 기억에 없으니 제외하고 아기때 말을 듣지 않아 맞기도 했겠지만 그런 기억은 스물스물 기억의 강 저편에 묻어두는 바람에 머릿속에는 남아있지 않다. 언제 처음으로 맞은 것을 기억할까?

 

내가 처음으로 맞은 것은 초등학교 입학해서다. (부모님에게 맞은 기억은 없다 - 분명 맞은 적이 있다고 했는데 말이지) 입학한 그 날인지 아니면 입학하고 나서 한주 지난 조회시간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운동장에 학생들이 정렬해 있는 것이 기억에 난다. 선생들이 앞으로 나란히를 시켜서 서열 종대를 맞추는데 아마도 내가 제대로 서지 못하고 삐딱하게 삐져나왔는가 보다. 갑자기 '너'하는 소리와 함꼐 선생님 한분이 다가오시는데 느닷없이 배를 주먹으로 내지르는데 그대로 고꾸라져 운동장을 굴렀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는 '얼른 안 일어나'.

 

폭력의 공포는 일어나지 않으면 더 맞는다라는 두려움으로 변해 고통을 감수하여 일어나 줄 맞춰서 섰다. 이것이 학교에서 선생의 학생을 가르치는 폭력의 형태라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은 고3때까지 꾸준하게 지속된다.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은 '폭력'이었다.

 

3. 첫 폭력

 

아마도 겨울이었을 것이다. 나이는 기억 나지 않아. 다만 '겨울방학'이었던 것을 기억하며 '서울'이었던 것을 기억하니까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리라. (2학년 2학기에 수원으로 전학갔다) 친구들과 겨울에 무슨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내가 친구에게 맞은 것이지. 이에 화가 났다. 그리고 내가 행한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고 두려운 행동이었는데 옆에 널부러져 있던 연탄(이미 재가되어버린)을 들어서 그대로 머리를 내리쳤는데 머리에 맞지 않고 뺨 부근에 맞은 것인데, 이것이 그만 고막이 터져버린 것이다.

 

아이는 쓰러졌는데 난 그 녀석이 일어나서 다시금 나랑 싸울까봐 부리나케 튀어서 집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몇시간후 그아이 엄마가 찾아와서 난리를 친 기억이 나고 그리고 부모님에게 죽도록 맞은 기억이 난다. 그것이 내 첫 폭력이었고, 누군가를 때리면 그 폭력의 배로써 내가 맞는 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는 누군가를 때리지를 않았다. 난 '폭력의 공포'가 너무나도 싫은 사람이다.

 

4. 첫 거짓말

 

3학년떄인가 그럴 것이다.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오락실이란 것이 생겼으니까. 내 기억에 최초의 오락은 스페이스 인베이더.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오락실에 나왔으면 거의 초창기리라 생각한다. 그 새로운 기기 문명은 나를 비롯하여 초등학생들을 광분케 만들었다. 세상에 그런 기기는 듣도보도 못한 것이었으며 총을 쏘고 피하고 하는 전자게임은 사람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어차피 용돈은 받는 것이고 군것질 하려고 돈도 받으니 '돈'은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는 오락실에 갈 '시간'을 빼는 것이 문제였다.

 

학교에서 끝나는 시간을 알고, 더군다나 집에 오는 시간도 아는데 중간에 새는 것은 생각도 못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집에는 들어가야 하고 그리고나서야 집을 빠져나올 궁리를 해야한다. 그 수단이 '거짓말'이었다. 친구집에서 숙제한다, 친구들과 운동한다라는 갖은 핑계를 대고 오락실로 향했다. 그 거짓말은 잘 먹혀들어가다가 어느날 오락실에서 나오는데 어머님이랑 딱 마주치면서 손에 질질 끌려 집에가서 또다시 맞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때 든 생각은 '폭력이 무서워 다신 안가'가 아니라 '이 거짓말은 안 통하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겠다'라는 생각이니. 이것이 폭력에 길들여짐인가?

 

5. 첫 칭찬

 

난 '외우는 것'을 참 못한다. 그렇기에 남들 다 하는 구구단을 2학년이 다 되어가서야 간신히 외우게 되었으니 참 '외우는 것'하나는 징하게 못한 인간이다. 그런 아이이니 학교에 입학해서 첫 시험을 잘 봣을리가 없고 물론 그로인해서 혼난 기억은 있는데 난' 왜 학교 공부를 못하는데 왜 혼나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인해 공부를 등한시 한 셈이다. 그런데 우연찮게 칭찬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받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국민교육헌장'이다. 이거 아는 사람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하교) 입학하면 일괄적으로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다. 그리고 난 지지리도 외우지 못하는 실력으로 밤마다 아버지에게 맞아가면서 한줄 외우고 한 줄 외우고 하면서 외웠다. 그렇게 며칠을 외웠나? 학교에서 선생님이 '외운데까지 외워'라고 시험을 냈고 아이들은 버벅버벅 대면서 대개 다 못외웠다. 물론 잘 외운 아이도 있는데 그중에 내가 속한 것이다. 물론 못외웠다고 때리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학교에서 '칭찬'을 받고 집에서도 학교에서 칭찬을 받았다니까 좋아하면서 날 '칭찬'해줬다. 이 '칭찬'은 무지하게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 이후로 난 초등학교 6학년까지 전교1등을 놓치지 않았다. '칭찬'의 힘은 '폭력'의 강압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내 처음의 기억은 대개 이렇다. 또다른 어떤 첫 기억이 있는지 현재 떠오르지 않는데, 이렇게 쓰다보니 '고통'과 '폭력' 그리고 '칭찬'속에서 아이의 변화하는 과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폭력은 '타의에 의한 강압적 피해 행동'이라면 칭찬은 '자발적 동기 유발'이 되는 것이다. 칭찬을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는데, 아이의 잘못을 '폭력'으로 혼내기 보다 '칭찬'으로써 스스로 잘하게끔 동기유발 시키는 것이 올바른 교육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도 '인간'인지라 감정을 조절하기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처음의 기억을 쓰다보니 느닷없이 '아이 교육'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는 어려서만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방법이다. 이는 가슴속에 깊이 기억해야 할 명심이기도 하다 아이든, 후배든, 제자든지 간에....

 

 

 

Written by 나그네

by 나그네 | 2008/05/24 00:00 | ◈일상에서의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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