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12일
[5] 평화적인 적장자 계승...
1] 또다시 시작된 선양의 거짓
우선 기록을 살피고 이야기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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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天下授益. 三年之喪畢 益讓帝禹之子啟 而辟居箕山之陽①. 禹子啟賢 天下屬意焉. [사기 하본기]
천하를 익에게 주었다. 3년 상이 끝나고 익은 우의 아들 계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피하여 기산에서 살았다. 우의 아들 계는 현명하여 천하의 마음이 그에게 돌아갔다.
有扈氏不服 啟②伐之 大戰於甘. [사기 하본기]
유호씨가 복종하지 않아 계가 토벌하여 감에서 크게 싸웠다.
① 맹자집해에서는 [陽]자가 [陰]으로 쓰인 것이라고 했다. 유희는 [숭고(嵩古)의 북쪽]이라고 했으며, 정의는 陰은 양성(陽城)이라고 말했다. 괄지(括地)의 志에서는 [箕山]의 箕자는 잘못이라고 했는데, 본래는 [嵩(숭)]자인데 서로 같이 쓰여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는 [숭산의 남쪽 23리에 있다]라는 말의 오역이라고 했다.
② 마융이 집해에서 말하길 [감은 유호씨 남쪽 지역의 이름이다] 색은에서는 [하나라 계가 토벌한 곳은 호남(鄠南)의 감정(甘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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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기록을 읽으면 필이 팍 하나 꽂힌다. 이거 사기구나라는 필 말이다. 뭐가 사기라는거야라고 의문을 가지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면 난독증이지. 첫문장에서 천하의 마음이 계에게 있다고 했는데 느닷없이 뒷 문장에서 유호씨는 복종하지 않아 전쟁을 했다라는 말이 나온다. 앞뒤가 모순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사기다. 그럼, 뭐가 사기일까? 전쟁을 한게 사기일까 천하가 계에게 돌아간 것이 사기일까. 좋은 말이 거짓말일까 나쁜 말이 거짓말일까. 아직도 모르면 자세히 설명하자.
천하는 선양에 의해서 계라는 우의 현명한 아들에게 돌아갔는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전쟁이 일어났다고 거짓말을 해야할까? 우왕은 그냥 ‘계’에게 천하를 넘겨주었는데 그것이 별로 타당하지가 않아서 ‘백익’에게 넘겨주었지만 안 받아서 계에게 물려주었다라고 거짓말을 해야할까?
답은 뻔하잖아. 천하는 ‘계’의 수중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반란을 일으킨 것이고 계왕은 그것을 토벌한 것이다. 자, 여기서 註단 것을 살펴보자. 백익이 도망친 곳은 숭산의 남쪽. 숭산은 하남성 등봉시의 서북쪽에 있는 산이다. 그럼 백익이 도망친 기산의 양성이라는 곳을 알았다. 그럼 전쟁이 벌어진 감은 어디인가. 호성의 남쪽 감정이라는 곳이라고 주에 달려있다. 그곳이 또 어디야라고 한다면 오자의 오기병법에 보면 유호씨를 [하나라때 중원지역을 다스린 제후]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라때 중원이 어디야. 지금으로 따지면 하남 낙양 동남부 일대다. 그곳이 호성인데 그곳의 남쪽에 감이 있으니 낙양의 남쪽이 된다.
유호씨의 지역이 바로 백익이 도망친 곳이다. 다시 말해서 백익이 도망쳐서 유호씨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한다면 이전까지 유호씨의 지역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런데 백익이 도주하고 나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가정은 2가지로 나뉜다. 첫째 가정은 유호씨가 백익을 존경했는데 백익이 왕위를 버리고 도주하고 계가 왕이 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과 둘째 가정은 백익의 왕위를 계가 빼앗고 백익이 유호씨의 땅으로 도주하여 이에 그들을 꼬드겨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2] 괜히 복잡한 말 하지말자.
하나라에서 상나라로 이동하는 시기를 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라고 구분 짓는다. 그래서 적장자 세습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이요, 은나라는 황하의 범람에 수도를 수십번 옮겨 다녔지만 상나라가 되며서 ‘은’에 도읍을 정하고 농경정착이 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즉, 계가 왕위세습 한 것도 시대적 필요에 의해서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건 역사상, 학문적으로 하는 말이고, 인간적으로 생각해보자. 앞에서도 누누이 이야기를 했듯이 ‘선양’은 없다라는 내 생각은 여기서도 똑같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그 이익은 ‘자신에게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 이익은 세상의 평판일 수도 있고, 도덕적 관념일수도 있고, 경제적 득실일수도 있다.
여기서 이익이란 권력의 이익이다. 백익과 계를 따져보자. 백익은 우왕을 도와서 정치에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정치인이다. 그러면서 정치가 무엇인지 아는 세상을 다스릴 줄 아는 그런 위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계라는 생판 아무것도 정치에 대해서 모르는 아들내미를 왕으로 세우는데 정신줄 놓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지. 더구나 아비 아들도 몰라보는게 권력 아니던가 말이다. 백익은 우왕 사망후에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될 인물이다. 우왕은 일찌감치 계에게 정치적 권력을 하나 둘 물려주는 정략적 작업을 실시한다.
우의 죽음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十年 帝禹東巡狩 至于會稽而崩
십년후 우왕은 동쪽으로 순행을 하다가 회계에 이르러 사망했다.

물론 사기 본기에는 우왕이 ‘9주’를 만들었다고는 되어있다. 그렇다고 하나라가 9주를 모두 다스린게 아니다. 하나라의 강역은 지도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회계까지 이르지도 않는 지역이며, 우왕은 제위를 물려받고 10년만에 죽었다. 물론 순행은 필요하지만 진시황과 같은 절대왕권을 휘두르던 시기도 아닌데 왜 회계까지 순행을 하는가?
한비자에서는 ‘...순이 요를 협박하고, 우가 순을 협박하고...’ 라고 했으며 사통에서는 ‘...순이 요를 평양으로 내쫓고, 순은 우에게 창오까지 쫓겨가서 죽었다...’라고 한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우가 하나라 강역도 아닌 회계까지 순행가서 거기서 죽은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백익의 반란에 쫓겨서 도망가다가 죽은 것이다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설명을 하자. 우는 계에게 정권을 물려주려고 사전작업 중에 이를 눈치채 배신감을 느낀 백익과 전쟁을 벌였다가 회계까지 쫓겨서 죽게되었고, 그 전쟁와중에 계는 하나라 강역의 주변 세력들과 함께 전세를 정비하여 계를 공격하여 양성으로 쫓아냈던 것이다.
양성으로 쫓겨난 백익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데 때마침 하나라와 본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유호씨와 손을 잡고 다시 재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물론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유호씨는 재기불능의 처참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뻔한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더구나 그것이 ‘권력’과 연계가 되었다면 그것을 함부로 내버릴 수 없는 문제가 된다. 평생을 우왕을 쫓아다니며 정치의 달인이 된 백익이 생판초짜이면서 그것도 우왕 자신의 아들인 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데 정신 안 돌아가면 그게 이상한 것일 것이다.
중국의 역사는 ‘기록 한줄’에 담긴 숨겨진 뜻, 왜곡된 뜻, 앞뒤 문장을 살펴서 그 안에 줄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록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중국사는 잘 살펴봐야 한다.
Written by 나그네
# by | 2008/04/12 00:55 | ◈중국역사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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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융이 집해에서 말하길이라고 적었다네. 마용의 집해가 아님.
집해에서 맹자를 인용한 것이라. 맹자집해는 없다 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