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魏] 오로지 주군에 대한 충정 - 공인 동소


0. Profile

 

자는 공인(公仁), 시호는 정후(定候). 제음군 정도현 출신. 후한말 현령을 지내다가 원소에게 발탁되어 참군사에 이명 되었다. 192년 공손찬과 기주분할로 전쟁이 벌어져 원소가 패하자 각군 태수들이 공손찬에게 붙으려고 하자 이를 계교로써 제어하였다. 위군태수가 되어서 적들을 이간계로 모두 토벌하여 원소의 기주 장악을 도왔다. 193년 장막과 원소간 사이가 안 좋아진데다가 동소의 동생이 장막에게 의탁하고 있어 이에 중상모략을 당해 원소가 죽이려 하자 하내의 장양에게 의탁하였다. 195년 이각, 곽사의 난으로 장안을 도주한 헌제를 모시기 위해 조조군이 장양에게 길을 비켜달라하자 동소가 그리하라 권했다. 이로 인해 조조와 사이가 좋아졌다. 황제가 낙양에 도착했을때 폐허가 된 낙양을 보고 조조에게 허창으로 천도하라 건의했다. 199년 장양이 죽고 그의 부하들이 원소에게 의탁하려하자 그네들에게 조조에게 항복하라 권하여 항복케 했다. 208년 오환족 정벌에 군량미 수송로로써 수로 준설을 건의하여 획기적으로 수송을 편하게 했다. 211년 조조에게 왕위에 오르도록 권했으나 순욱의 반대로 실패했다. 219년 관우가 번성을 공략했을때 손권의 동맹제안의 계략을 간파하고 이를 역이용한 후 서황으로 하여금 형주로 돌아가는 관우를 공격케 하여 승리했다. 221년 하후상의 군대가 손권의 강릉을 공격하는데 함락치 못한채 지지부진하자 조비에게 철수의 이로움을 아뢰 철수케 했다. 232년 사도가 된 후 조예에게 관리로서의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한 신하들을 척결할 것을 제안하여 등양, 제갈탄이 파면되었다. 236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 원소의 신하로서의 삶

 

동소는 자신의 주군을 위한 삶을 위해서 살아간 인물이다. 초기에 원소에게 있었는데 만약 원소가 동소를 믿고 따랐다면 그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만 원소라는 인물의 그릇은 그렇지가 못하니 그런 생각해서 무엇하리. 중간에 장양을 택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도 난세에 그릇이 되지 못함을 파악하고 조조에게 자신의 둥지를 바꾼다. 그럼 동소는 자신의 주군을 위해서 어떤 충성을 바쳤는지 살펴보자. 이 인간, 띄엄 띄엄 볼 인간이 아니다.

 

반동탁토벌군을 결성했던 원소는 동탁을 장안으로 내쫓기는 했지만 다시금 제후들끼리 싸움박질을 하자 이를 해결치는 않고 그냥 자신의 영지인 하내로 돌아온다. 돌아왔지만 난세에 흉년이라 백성들 먹고 살 식량도 부족하여 토벌군의 군량을 보급했던 기주자사 한복에게 식량을 빌려서 연명하고 있던 빈궁한 처지였다. 이에 원소의 부하 봉기가 나서서 아뢰기를 한복에게 곡식을 빌리지 말고 그냥 기주를 장악하라 권한다. 이에 원소가 승낙을 하니 봉기는 공손찬에게 밀지를 보낸다.

 

기주자사 한복을 죽이고 기주를 반으로 나눠 가집시다

 

공손찬이 이런 좋은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다. 공손찬은 좋다하고는 바로 군사를 재정비하여 출정준비를 분주히 했다. 봉기는 공손찬에 이어 곧바로 기주자사 한복에게 갔다.

 

공손찬군이 기주를 치려고 하오. 그대의 병력은 약하고 공손찬군은 강하니 우리가 그대를 도와 싸울테니 성문을 열어 맞이하시오.

 

이거, 계략이다. 그것도 아주 하급의 계략이다. 길을 빌려 그 나라를 먹으려는 수작이 아니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친다는 명목으로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 하고는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겁쟁이 기주자사 한복이야 항복을 하려고 했지만 신평, 신비, 순심등의 신하들은 원소의 계략에 불과하다고 기주의 기반을 바탕으로 싸우면 지지 않는다고 간했지만 한복, 신하들 말을 듣지를 않고 원소를 맞아 들인다. 원소군은 성에 들어서서는 반항하는 신하들을 죽이고 한복의 권력을 뺏어서는 기주를 장악해 버린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면 공손찬은 손 안대고 코를 푼 격이지 않는가. 전쟁도 안하고 기주의 반을 먹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에 사자를 보내서 기주의 반을 달라고 하지만 원소가 줄 리가 만무하다. 어차피 그것조차 계략이었으니 말이다.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공손찬이 기주를 공격하여 원소와 싸워 초반에 원소를 대패시켰다. 이에 기주의 각성들은 한복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원소가 마음에 안든데다가 공손찬과의 싸움에서 지자 공손찬에게 붙으려고 하는 조짐을 보였다. 원소도 걱정이고, 모사들도 기주의 세력이 반원소파가 될까 걱정할 무렵인 이때 동소라는 신하가 나선다. 그는 기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반원소 친공손찬파인 거록태수를 만난다. 그 거록태수를 홀홀단신으로 만나서는 어떤 사전공작 작업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친원소로 만들어버린다. 이뿐인가. 친원소파인 위군태수가 반원소파들에게 살해되고 무주공산이 되어 엉망이 되어버리자 스스로 위군태수로 자임해 가서는 이간계를 써서 반원소파들의 마음을 방심케하고는 순식간에 군을 풀어서 제압하고 숙청해버린다.

 

이 정도 인물이면 충신이다.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주군을 위한 일을 하는데 어찌 충신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원소는 그게 아닌가 보다.

 

2. 장양의 신하로서의 삶

 

동소는 원소의 영으로 헌제를 배알하러 장안으로 떠났다. 그런데 이때 장막과 원소의 사이가 틀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원소가 시킨 일 혹은 명령을 장막이 거부한 것에서 틀어졌으리라는 판단은 선다. 이렇게 사이가 틀어지자 원소는 장막 일파와 관계된 이들을 들추는데 이때 동소의 동생 동막이 장막의 휘하에 있음을 알아낸다. 속좁은 원소 자신이 명령을 내려 헌제를 배알하러 보냈음에도 곧바로 동소를 참수하라고 영을 내린다. 이런 상황에 헌제를 배알하러 가던 동소는 하내에서 장양이라는 이에게 잡혀버린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다가 장양이 원소의 영임을 밝히자 동소는 바로 그 자리에서 위군태수의 관인과 직위를 모두 버리고 장양에게 투항한다. 자신을 버린 주군은 더 이상 주군이 아니다 뭐 그런 식의 이야기 일 것이고, 그의 말발로 장양따위 속이고 녹이는 것이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다.

 

장양의 수하에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이각과 곽사의 내분이 일어났다. 이로인해 장안에 구금되다시피 있던 헌제가 양표의 도움으로 탈출을 감행해 낙양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각과 곽사의 추격군에 쫓기게 되고 양표는 조조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조조가 낙양으로 지나가려면 하내를 지나가야 해서 하내의 장양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권했다. 장양이 어쩌할지 몰라 동소에게 의견을 구한다. 동소는 장양에게

 

난세에 가까운 제후들과 척을 져서 좋을 것이 없으며, 지금 조조로서도 굳이 헌제를 구출하러 가는데 우리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 길을 빌려주는게 좋다.

 

라고 말하며 조조군이 하내를 지쳐 헌제를 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로인해 조조와 장양의 관계는 우호적이 되었으며 조조는 이각과 곽사의 추격군으로부터 위험에 처한 헌제를 구출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가져오게 된것이다.

 

조조는 이렇게 구출을 하고서 다시 본거지로 돌아가 허창의 황건적 소탕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러한 때에 낙양에서는 한섬과 양봉, 장양과 동승 사이에 분란이 벌어진다. 이유는 뻔한 것이 황제가 무사해지니 앞으로 황제가 친정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황제구출공신으로서 직급이나 녹봉등에 있어서 더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함임은 어렵지 않게 유츄할 수 있다.

 

동소로서는 한섬,양봉,동승에 비해서 세력이 약하고 권력에서도 한직인 장양이 황제구출공신에서 그 힘이 밀리게 되자 조조를 불러 이 관계를 해결할 수 있도록 양봉에게 시킨다. 양봉으로서도 조조가 자신과 협력을 하게되면 좋겠다 싶어서 냅다 부른다. 왜 동소는 장양에게 시키지 않았을까. 장양은 한섬, 양봉등에게도 그 세력이 약하다. 그 약한 세력이 진류의 군벌로 급성장하고 있는 조조와 손을 잡게되면 협력이 아니라 흡수가 되어버리는 우를 가지게 된다. 동소로서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양봉이라는 세력으로 하여금 조조를 불러들이게 한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조조가 놓칠 리가 없다. 허창의 황건적 잔당도 소탕을 했겠다 굳이 시간을 늦출필요가 없어서 바로 병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진입한다. 조조로서는 미끼가 필요했을뿐 양봉과의 협력은 관심밖이었다. 그래서 낙양에 입성하자마자 헌제의 탈출에 공이 큰 양표와 동승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후 양봉을 그대로 몰아내버린다. 그러면서 서황이라는 장수를 수하에 넣게 되는 것이다. 양봉의 세력이 조조에게 일망타진당하자 한섬은 어맛뜨거라하면서 도망쳐버린다. 장양으로서도 도주를 해야하지만 이에 동소가 나선다. 동소는 조조에게 다가와서는

 

낙양은 동탁이 모두 태워버려 도읍지의 구실을 하지 못하며, 새로 재건하려면 난세에 먹고살기 힘든 백성을 노역에 종사케해야하는데 이는 백성의 민심을 얻어야 하는 이때에 옳은 행동이 되지 못한다. 이번에 군께서 얻은 허창은 영토도 낙양에 버금가고 성과 궁은 조금만 손보면 되므로 천도하기에 적합합니다.

 

조조는 동소의 의견이 옳다고 여기고 곧바로 헌제를 허창으로 모시고 간다. 허창의 이름이 허도가 된 것이 바로 이때다. 이는 조조에게 난세에 큰 힘을 준 기회가 되었으며 동시에 동소로서도 조조를 장양의 근거지인 하내에서 멀리 떨어뜨렸다는 것에서 그나마 안심이 되는 제안이었던 것이다. 서로서로 좋자고 하는 식의 계략. 그것이 동소의 스타일이다.

 

하내로 돌아온 장양은 세력을 키워보기도 전에 양추에게 피살당해버리고 이로인해 그의 부하들은 성을 굳게 지키며 사자를 원소에게 보내 구해달라고 하였다. 이때 동소가 격렬하게 반대를 한다. 동소로서는 원소를 주군으로 맞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인물을 어찌 주군으로 맞는가 말이다. 동소는 다시금 부하들을 말발로서 설득시켜서는 하내를 들어 조조에게 바치게 된다.

 

3. 조조의 신하로서의 삶

 

동소가 인생의 반생을 주인으로 모시게 된 조조를 섬기게 되면서 동소의 능력도 한층 더 진화하게 된다. 관도대전에서 조조군이 원소의 장군 안량때문에 맥을 못추자 이를 해결한 것이 관우의 원킬이었다는 것은 소설에서 알고 있는 부분인데, 정사에서는 그 안량을 죽여서 조조군의 진로를 터놓은 것이 동소의 군대라고 되어있음을 보면 만만한 사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동소가 장군감, 사령관급으로 보기는 어렵다. 전풍이 3군의 대장을 맡을만하다고 말한 안량을 동소같은 문인이 정면대결로 깨부술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분명 그 이면의 모략이 있었겠지 않은가. 기록으로서야 그게 끝이지만 말이다.

 

조조군은 원소군을 몰아붙여서 원소를 죽이고 원소의 자식들마저도 오환땅까지 쫓아내버렸다. 조조야 끝내고 싶었겠지만 곽가로서는 그들을 내버려두면 두고두고 후환이 된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자신의 죽음이 다가옴을 느꼈음인지 조조에게 끝장을 봐야한다면서 오환정벌까지 감행을 한다. 그런데 이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바로 군량미의 수송이동이었다. 중국영토내에서 치고받고 싸울때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군량의 수송이었는데 오환이라는 오랑캐땅까지 군량 수송을 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댓가가 따르게 된다. 그런데 이 수송로를 동소는 한번에 해결을 한다. 동소의 의견인즉슨 육로로 가게 되면 수많은 마필이 필요하고 인력도 필요한데다가 오랑캐땅의 거침이 문제라고 판단하여 수로를 만들어서 군량을 수송하면 경제적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건의하였다. 이로인해 오환족 정벌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원씨가문을 절멸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211년에는 조조를 위공에 오르게 하고 구석*을 청하라고 권하였으나 순욱이 반대하여 이뤄지지는 않았다. 213년에 다시 재청하여 위공으로 추대하였다.

 

* 구석(九錫)

➀ 거마(車馬) 흑마와 황마가 이끄는 황금마차

➁ 의복(衣服) 왕의 예복

➂ 악현(樂懸) 옥으로 만든 장식품

➃ 주호(朱戶) 붉은 색의 저택 (붉은 색은 황제의 색깔)

➄ 납폐(納陛) 천자의 궁에 신발을 신고 오를 수 있다.

➅ 호분(虎賁) 3백명의 호위군사를 둘 수 있다.

➆ 부월(斧鉞) 왕, 황제만 사용하는 금과 은으로 된 도끼 한쌍

➇ 궁시(弓矢) 붉은 활 한 벌과 화살 100개, 검은 활 열벌과 화살 천개

➈ 거창규찬(秬鬯圭瓚) 황제가 종묘제례를 할때 사용하는 향기로운 술과 옥으로 만든 제기

 

위에서 보듯이 구석이란 거의 왕이 되라는 이야기에 진배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제안을 동소가 최초로 제안을 한 것에서 보듯이 동소는 후한이라든지 다른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오로지 조조만 잘되기를 바라는 조조 해바라기다. 그렇다고 간신배니 아첨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대가 조조를 원하고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조조 향한 해바라기는 조조를 공격하는 타 세력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을 한다. 관우가 조인의 번성을 공략하여 위기에 처하자 손권은 조조에게 서신을 보낸다. 내용인 즉슨 관우를 협공하여 사로잡을 계책의 내용인데 이를 비밀로 해서 처리해 관우 모르게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모두 이에 동의를 하는데 동소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조조에게 고한다.

 

이는 비밀로 할 사안이 아니다. 손권은 이 계략을 비밀로 하여 형주 공략하여 관우를 사로잡게 되면 그 모든 죄를 우리에게 뒤집어 씌워서 그 어부지리로 형주를 모두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를 관우도 알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랑과의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는 그로서는 동시에 오나라 공격까지 막아야 하니 군사를 분산시킬 것이고 손권의 야욕까지 드러났으니 손권이 뒷장난을 칠 수 없을 것이다.

 

이로인해 손권은 느닷없이 관우의 뒤를 치는 배신자가 되어버리고, 군사까지 출병한 마당에 되돌릴 수도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위나라와 동맹을 맺어버리게 된 셈이 되었다. 동소는 이 상황에서도 손권의 공격으로 관우가 형주로 도망가려는 것까지 파악하고 서황을 보내 관우의 뒤를 치게 하여 관우군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게 한다.

 

그에게는 손권의 도움이나 혹은 그네들이 우리를 도와주니 그 정도는 눈감아주자 뭐 그런 마음따위는 애초에 없다. 그네들의 면목이나 눈치, 체면까지 우리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듯한 동소의 발언과 행동은 전형적인 조조에게 이득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로 모든 사안을 판단한다. 그것이 그에게 정의이고 진리인 셈이다.

 

4. 딱 한 발 앞선 시야

 

동소의 시야는 빼어나게 넓다거나 앞뒤를 모두 파악한다는 식의 연결고리적인 사고에 있어서는 다른 모사들에 비해서 약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의 한발 앞선 행위에 있어서는 으뜸이요, 지존이다. 관우의 번성 공략에 있어서도 남들은 조인을 구하기 위해서, 혹은 관우의 공격을 피하는 방법에 있어서 계략과 모략, 혹은 손권과의 동맹제안으로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동소는 그네들이 이룬 기반 위에서 자신의 행동을 마음껏 펼친다. 일종의 멍석을 깔아야만 춤을 추는 그런 스타일인 것이다.

 

이뿐인가. 동오를 공격하기 위해서 하후상을 대장군으로 삼아 강릉을 공격했는데 이게 영 지지부진한 것이다. 동소는 그러한 전황을 보기 위해서 문제 조비와 함께 전장을 살펴보러 갔다가 진을 삼각주에 친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조비에게 고한다.

 

삼각주에 진을 치는 것이 아니며, 지금 당장에는 강릉을 치는 진영으로 유리할지 모르나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밀물이 들어와 잠겨버리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됩니다. 차라리 철군을 시키심이 낫습니다.

 

조비는 동소의 의견을 듣고 하후상의 부대에 영을 내려 철군을 명했다. 하후상으로서야 조금만 더 공격하면 점령될 것 같은데 느닷없는 철군에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철군한지 10일만에 밀물이 들어와 삼각주를 덮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제서야 모두들 동소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조비는 그런 동소를 든든히 여겼다.

 

딱 거기까지다. 동소는 거기까지다. 철군한후 다시 강릉을 어떻게 공격한다든가 지지부진한 강릉 공격을 더 효율적으로 어찌해야 점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책이나 계략은 없는 셈이다. 그러기에 동소는 모사나 군사급이 안되는 것이다. 두발을 못나가는 동소의 지략의 한계라고나 할까. 하지만 어떤가. 오로지 주군이 잘 되기만을 바랬고 그로인해 주군을 위험에 처하게도 하지 않은 그런 신하라면 주군이 믿고 아껴줘야 할 신하이리라. 그렇다면 원소는 정말 신하 볼 줄 모르는 인물이지 않은가 말이지.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조조가 낙양에서 헌제를 모시게 되어 헌제를 모셨던 인사들과 인사를 하는데 모두의 얼굴이 그 난세에 피죽도 못 먹어 모두 얼굴이 거무티티하고 피곤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유독 그 중에서 얼굴에 기름이 반질반질 거리고 혈색이 화사한 신하를 보게된다. 조조가 희한해서 그대는 어찌하여 안색이 그리도 좋은가라며 묻자 동소가 껄껄거리며 말한다.

 

30년간 채식만 하다보니 장이랑 피부가 좋아졌고,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그가 그 시대에 거의 드물게 81세라는 장수를 누린 것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채식만 하지 말자.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책사중에 최응이라는 이가 있는데 왕건이 그대는 어찌 그리도 건강이 좋은가라고 묻자 채식만 하기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런 최응은 35세로 요절을 했다. 굳이 다른 사람의 삶을 따라 갈 필요는 없지 않는가. 당시 태조 왕건의 드라마 인기가 좋아서 그 대사에 채식주의자가 급격히 늘어났다가 단백질 부족으로 병원에 입원한 예가 늘어났다고 한다.

자기 몸에 맞는 생활을 하는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Written by 나그네

by 나그네 | 2008/02/04 00:55 | ◈삼국지관련논제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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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동호 at 2008/02/04 01:34
맨 마지막 문단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채식 한 번 해볼 까' 했습니다 :)
Commented by 麒麟기린 at 2008/03/13 21:30
^^좋은글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나그네님글.. 자식에관한 포스트를 퍼가도 될련지요? 이글루는 아니고.. 피플투라는 사이트라는 곳에 말입니다.물론 출처랑 다 표기해서 말이죠;ㅎ
Commented by 나그네 at 2008/03/13 23:02
麒麟기린> 출처 표기하시면 퍼가시는 것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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