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9일
[蜀] 자기의 안위만을 위해 살다간 실패자 - 자도 맹달

0. Profile
자는 자경(子敬)이었으나 훗날 자도(子度)로 바꾸었다. 부풍군 미현 출신. 196년 법정과 함께 촉의 유장에게 출사하였다. 211년 장송이 법정과 익주를 유비에게 넘길 계략을 모의할 때 우연히 놀러갔다가 이를 엿듣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212년 장송의 계략이 들통나 장송이 주살당하자 법정과 함께 유비에게 투항하였다. 그리고 곽준과 함께 장로의 남침을 대비하기 위해 가맹관으로 갔다. 213년 마초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졌으나 제갈량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218년 장합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패하여 유비에게 원군을 요청하여 황충, 엄안의 도움으로 가맹관을 지켜냈다. 한중 공략전에서는 하후연이 황충을 치러 본진을 비운 사이 하후연의 본진을 차지하여 승기의 기회를 잡았다. 219년 방릉과 상용을 공격하여 함락하고 220년 관우에게 원군을 보내지 않은 것에 불안을 느끼다가 팽양과 부하의 제언을 받아서 조비에게 투항하였다. 223년 촉 정벌위해 상용으로 출정하였으나 병으로 귀환하고 227년 신성 태수로 있으면서 조비에게 반란을 일으켜 제갈량에게 항복한다는 서신을 보냈으나 제갈량의 조언을 무시하다가 사마의의 공격을 받는다. 선봉 서황을 활로 쏘아 죽이나 신성은 포위당한다. 228년 부장과 조카의 배반으로 사마의에게 잡혀 참수되었다.
1. 유비에게 투항한 익주 인사의 성향
맹달은 그의 나이를 모른다. 하지만 대략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 법정과는 같은 부풍군 미현 출신으로 지우지기였고, 196년에 같이 출사를 하였으니 나잇대야 동갑이거나 앞뒤로 두어살 차이가 날까 하겠다. 설마 그렇다고 공융과 양수, 예형과 같이 나이가 스무살 이상 차이는 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법정이 220년에 46세의 나이로 죽었고, 맹달은 그보다 8년을 더 살았으니 55세 전후 되리라. 그렇다면 20대 초반에 유장에게 출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211년 유비에게로 배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때 그의 나이는 마흔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220년 10년후 다시 배반을 하고 227년 7년후 다시 배반을 하려다가 죽었다. 마흔살부터 시작된 그의 배신 행위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우선 익주파로서 유장을 배신하는 이들은 유장에게 대우를 받지 못하여라고 설명을 받고 있지만 이게 웃기는 것이 20대 초반에 출사를 하여 20여년간을 그의 밑에 있었는데 그 동안 유장에게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네들에게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들이 장송, 법정, 맹달, 팽양이다. 뭐 그닥 능력이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유장이 천하에 소문난 멍청한 임금이 아닌 다음에야 능력이 있는 이들을 마냥 귀히 쓰이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네들의 경우는 장송은 유장에게 모반이 걸려 죽었지만 법정을 제외한 맹달과 팽양은 재차 모반을 획책했다는 데에서 그네들의 성향이 드러난다. 현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다른 세력을 부러워한다 뭐 그런 인사들일 것이다. 즉, 불만세력이지 그네들이 능력에 대해서 부당대접을 받은 재능있는 인사들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장송은 한번 본것을 그 자리에서 외워버리는 암기력이 뛰어날지 몰라도 스스로의 처신은 제대로 못했으니 헛똑똑한 스타일이다. 법정은 유비에게로 말을 갈아탄 후로 적극적으로 친유비파로 변신하여 철저하게 유비의 오른팔이 된 인물이다. 하지만 팽양과 맹달은 그렇지 못했다. 더구나 팽양은 자신도 모반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대접을 받지 못하자 술김에 마초에게 조조에게 같이 투항하자는 권유까지 하는 우를 범했으니 그저 반체제 인사에 불과할 따름이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맹달도 팽양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 그네들은 왜 배반을 하려고 했는가. 유장 휘하에서 20여년이 넘도록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어떻게 20년 동안 대우를 받지 못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 첫째는 무능력함이다. 하지만 저네들은 무능력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두 번째 처신의 문제다. 관직이라는 생활은 정치가 함께하는 생활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정치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는 것이 관직생활이라는 것이고, 그것이 사회생활이라는 것이다. 법정의 처신이야 대놓고 알듯이 시건방짐과 시니컬함, 막되먹음이라는 것만 보아도 그의 관직생활이 여의치 않았음은 눈에 보듯 뻔하고 따라서 그의 상사나 상관이 그를 윗전에 진급이나 그런 것으로 고했을 리가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팽양 역시도 처신의 잘못이다. 팽양은 직급 낮은 것을 투덜대는 것을 보자면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여 자신의 자리에 안주를 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주의 도서관장직에 있으면서 유장을 비난했다는 죄로 파직당해 노예가 된 인물이다. 왜 비난 했는지는 뻔할 것이다. 자신을 높은 직위에 넣어주지 않았으니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털어놓았을게다. 그로인해 노예가 된 그는 익주로 입성하는 유비군의 방통을 만나서 떠벌리는데 ‘천하사를 내가 가르쳐주겠다’고 큰소리 떵떵친다. 천하의 방통을 상대로 저런 허풍을 치는 인간이 팽양이란 이의 그릇이다. 그런 그가 유비 익주에 공을 세웠음에도 낮은 자리를 주고 불만을 토로했을 것이고 더구나 그가 주변인들에게 너무 거만하게 행동한다는 탄핵이 들어가 좌천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여 모반을 품고 있음을 막 귀순한 마초에게 같이 투항하자고 꼬드기면서 그의 인생을 막내리게 된다.
즉, 이를 보았을때 이네들의 배신 이유는 한가지다. 반체제인사인데다가 불만세력이다. 더군다나 스스로를 과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인간들이다. 즉 처신에 문제가 많은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뭐 맹달의 죽음을 살펴보자면 그 역시도 제갈량과 사마의를 우습게 알았으니 그꼴이 된 것이겠지만 말이다.
2. 익주 3인방에서도 뒤처지는 능력
맹달도 저네들과 크게 다를바 없다. 더구나 맹달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천하를 주물럭거렸던 법정이나 스스로 초천재라 생각한 팽양등과 어울렸던 것을 보자면 스스로도 그런 부류에 낀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그네들의 영향으로 스스로 천재급은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맹달이 본래 유장을 배반하고 유비를 익주로 들이는데 찬성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익주 3인방 - 팽양은 스스로 유비에게 투항하여 익주 정벌을 방통과 상의한 인물이니 독자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 중에서 맹달이 가장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모반 계획을 맹달 뺀 3인방이 모의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네들은 어쩌면 맹달을 신뢰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맹달은 우연하게도 모의를 하는 그네들의 계획을 엿듣게 되고 ‘쇼’를 하게 된다.
모반 모의를 하는 그네들의 방문을 느닷없이 벌컥 열어제끼고는 유장에게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논 것이다. 느닷없는 맹달의 행동에 둘은 당황을 하게되지만 여기서 둘의 성향이 다시 나뉘는 바 장송은 낙담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지만 법정은 그런 맹달에게 유장따위에게 충성이나 바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네 녀석과 내가 친구였다니 한심하다라면서 도리어 맹달에게 면박을 준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대처는 확실히 법정이 장송보다 한수 앞섬이 있었던 바다. 이에 맹달은 농이었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유비의 익주 입성 전략에 참여를 하게 된다.
왜 법정과 장송은 맹달과 친구이면서 왜 모반 계획에 참여를 시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셋 중에서 그나마 재능이 엿보이는 법정의 경우는 맹달과 동향친우이지만 유장에게 임관하고서는 도리어 장송과 더욱더 절친한 관계가 된 것이다. 그리고서는 유장의 그릇이 작음에 한탄을 한다. 아마도 그릇의 작음이란 난세에 천하를 잡을 야망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유표의 휘하 재사들이 유표를 배반하고 다른 이에게 배신하지는 않지 않았는가. 그릇이 작다고 군주를 바꿔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어차피 그네들의 품행에서의 문제가 그네들이 유장내에서 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킨 이유임을 몰랐던 것이다.
맹달은 법정의 단호함에 꼬리를 숙이고 동참하게 된다. 맹달은 꾸준함과 강건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는가. 만약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동향지우인 법정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법하거늘 그러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맹달로서는 같이 임관을 했지만 법정이 품행상의 이유로 임관과 작급이 낮은 곳에 머물자 아마도 그를 무시했던 것은 아니겠는가. 그러지 않고서야 법정이 맹달보다 더욱더 친해진 장송과 모반을 같이 획책한 것에 대해서 무엇이라 설명할까. 맹달이 본래 머리가 나빠 내 친구가 아니다라고 법정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3. 실패한 인생사
익주 정벌전에 장송의 모반계략이 들통나 죽어버리자 법정과 맹달은 그대로 유비에게 투항을 한다. 이에 법정은 유비의 익주정벌에 모사로서 참여하는 반면에 맹달은 장로가 남침할 가능성을 염두해두어 제갈량이 가맹관에 배치한다. 어차피 전쟁이야 제갈량이 하는 것으로서 익주의 지도야 장송이 전에 바친 것이 있었기에 굳이 법정의 능력은 필요없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법정을 참정군사로써 대우함으로써 대외적인 마케팅으로서의 효과를 제갈량은 노렸던 바도 있다. 하지만 맹달은 귀순하자마자 가맹관이라는 중요요지를 맞게된 것이다.
제갈량은 맹달의 능력을 첫눈에 보고 알아봤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익주인사라서 장로와의 관계 때문에 가맹관에 심어놓는 것이 낫다라고 여겼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런 능력은 법정이 나았을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제갈량은 인재를 어떻게 보고 판단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단지 귀순했기에 인정한다는 방면에서 살펴본다 하더라도 가맹관이라는 지역은 너무 중대하지 않은가. 그렇게 믿고 맡겼지만 제갈량이 익주를 점거한 후 장로가 마초를 가맹관으로 파견하자 고스란히 대패하여 원군을 요청하는 가하면 장로 멸망후 조조가 장합을 선봉으로 쳐들어오자 다시금 패하여 원군을 요청하는 등 패전만 거듭하는 패장이 되고 만다.
그로서는 위나라의 방릉과 상용을 차지하는 공적을 세우기도 하지만 그의 공적은 거기까지였다. 관우가 번성 공략에 실패후 맥성에서 원군을 요청하자 단호히 거절한다. 첫째가 상용을 점거한지 얼마 안되 민심을 얻지 못했으며, 둘째로 조조군의 재공이 있으면 지켜낼 수 없다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이 이유가 웃긴 것이다. 조조가 번성의 관우 공격으로 인하여 형주에 병사를 투입할 여유가 없는데다가 그렇다고 다른 지역의 병력으로 상용을 굳이 공격하여 차지하였다고 하여 얻을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조조로서는 관우의 형주를 공격하여 차지하면 상용 따위야 뒤집으면 취할 수 있는 쉬운 지역이 되는 것이다. 맹달의 실수는 여기에 있다. 그의 계산은 자기 자신에게만 맞춰져 있다. 상용을 포기하고 병력을 모두 이끌고 맥성으로 갔다면 관우를 살리고 형주 탈환 혹은 훗날을 대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당장에의 상용은 맹달의 말마따나 점거하지 얼마 되지 않은 땅에 불과하다. 따라서 촉에 없었던 땅이 하나 생긴 것에 불과하지 형주를 잃으면서 지켜야 할 주요 거점은 안되는 땅일 뿐이었다.
이런 작전 미스는 관우를 죽게하고 이에 유비의 보복이 두려운 맹달은 조조에게로 상용을 들어 항복하고 만다. 그런데 그 제안을 한 인물이 신탐과 신의였다. 이네들은 바로 몇 달전까지만 하더라도 위나라 상용의 태수로 있던 형제다. 맹달이 공격하자 이기지 못하여 항복한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네들은 맹달의 심복이기보다는 여전히 위나의 부하로서 마음가짐이 더 큰 셈이다. 더구나 유비의 의제인 관우의 죽음에 원인이 되는 맹달의 행동은 그네들로서는 다시 위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네들은 맹달에게 자기네들이 잘 말해줄터이니 투항하라 권유한 것이다. 맹달은 갈데가 없으니 위나라에게 투항했지만 자기 부하가 된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이들의 말을 믿고 행동을 하다니 참 어리석은 인간이다.
더구나 이 둘은 훗날 맹달이 신성태수로 부임하여 제갈량과 모의하여 재차 모반할 모습을 보이자 곧바로 조비에게 보고하여 사마의로 하여금 때려잡게 하는 인물이니 도대체 어찌 믿어도 저런 인물을 믿는단 말인가. 그리고 이런 인간을 믿고 다시 모반 계획을 세운 제갈량도 눈이 삐어도 한참 삐지 않았는가. 더구나 맹달은 제갈량의 사마의를 조심하라는 서신에 콧방귀를 뀌고 사마의의 행동반경을 미처 살피지 못했으니 그런 이가 어찌 한 성의 태수를 맡을 수 있단 말인가.
뭐하나 남들에게 인정받지도, 그렇다고 성공한 인생을 살지도 않은 채 자기 인생의 안위만을 위해 박쥐처럼 옮겨다닌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실패했다고 말해도 되지 않겠는가.
Written by 나그네
# by | 2008/01/19 21:45 | ◈삼국지관련논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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