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9일
[魏] 조조군 유일의 호족세력 - 만성 이전

0. Profile
자는 만성(曼成), 시호는 민후(愍侯). 산양(山陽)군 거야(鉅野) 출신.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여 이를 기특히 여긴 조조의 눈에 들어 그를 영음 현령으로 삼았다. 관도전 당시에는 종족과 부곡들을 거느리고 조조군에게 군량과 비단을 공급했다. 이 공을 인정받아 조조로부터 비장군에 임명되었다. 여양에서 원담과 원상을 격파했을때는 군량을 배로 운반하였는데 원상의 군대가 물길을 끊어 수송이 어려워지자 조조의 영을 어기고 하북의 원소군을 단독으로 공격하여 물길을 뚫는 용단이 있었다. 하후돈의 부장이 되어 형주의 유비를 공격함에 매복을 조심하라 간언하나 하후돈이 듣지 않아 대패하였다. 조조는 손권의 북침을 걱정하여 합비에 이전, 악진, 장료를 배치하고 장료를 사령관으로 삼아 사이가 좋지 않아 장료의 영을 따르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자 이전은 ‘공적인 국가 일에 어찌 사감으로 그르치겠습니까’라면서 조조의 마음을 놓게 했다. 36세에 요절했다.
1. 북방의 호족세력
조조군은 호족집단 세력이 아니다. 초기 멤버들은 친혈족 집단의 모임이고 이후는 구현령으로 인해 모여든 재주있는 이들의 모임집단이다. 각 지역에서 어중이 떠중이로 모여든 난민집단 유비와도 다르며, 호족집단 연합으로 세력을 결속한 손책과도 다른 스타일이다. 그리고 초기 멤버가 친혈족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그네들에게는 병사집단이 없던 이들이다. 그러니 하후돈의 경우는 청주의 황건적을 부하로 삼아 병사로 거느리는 등 병사의 모집과 징병이 오나라 초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한 조조군 집단에 특별한 사내가 있으니 바로 호족집단 이전이다.
이전의 작은 아버지 이건은 젊어서부터 호기가 있어 후한말 난세무렵에 천하의 빈객들을 초빙하고 모아서 사병집단을 이루었다. 그러던 차에 조조가 연주로 와서 세력을 세움에 사병을 이끌고 귀의하였다. 초기 조조군으로서는 빈객 수천가문의 사병을 거느리는 이건의 세력이 고마울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오자마자 사병을 혁파하여 조조군의 병사로 삼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은 조조에게 귀의하지만 어떻게 소속됨이 없이 자신의 사병들로써 황건을 격파하고 황건 이후에는 황제를 참칭하는 원술을 격파하는가 하면 여포의 서주를 정벌하는데 역시 자신의 군사력으로 조조를 따랐다.
여포의 난으로 연주가 여포 수중에 들어가자 조조는 이건을 그의 본거지로 돌려보내 사병을 관리 잘하도록 격려하였다. 혹시나 잘못되었을 경우 이건의 사병에게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다. 이건으로서는 본거지에 사병을 훈련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여포의 부하인 설란과 이봉이 이건을 찾아와 여포를 도와 연주를 장악하자 권하나 이건은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이들은 결국 이건을 살해하고 만다.
조조는 이 소식을 듣고는 이건의 사병들이 혹여라도 여포군이나 다른 세력으로 흩어질까 두려워하여 이건의 아들인 이정으로하여금 아비의 뒤를 잇게하고 아비의 복수를 하도록 하여 병력을 지원해주니 이정은 아비의 복수를 이루고 연주의 각 현을 평정하면서 조조의 연주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정도 그리 오래 살지 못해 죽으니 조조는 조카 이전으로하여금 이정의 사병을 지휘토록 하며 영음현령으로 삼게된다.
2. 백면서생의 난세 성장기
이전은 공부만 하던 사내다. 그것도 선비들의 학문이지 병법서나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난세에 스승으로부터 병서를 배우자 스승의 집으로 찾아가 병서를 배우기 싫으니 춘추좌씨전을 가르쳐달라고 조르기까지 하여 스승이 두손 두발 다들었다고 한다. 이때에 사서삼경을 위시로한 경서를 배우니 스승도 그의 학구열에 놀라서 더욱 가르침에 정진했다고 하니 그의 두뇌는 어쩌면 치세의 문관스타일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이전의 스타일은 조조의 마음에 들었던 터였다. 병력도 없던 자기에게 사병을 이끌고 들어와 일선에서 제몫을 다하는 이건을 살펴볼진대 아들도 아비와 닮았는데 유독 조카인이전은 창,칼 등의 무예를 수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육도삼략등의 병서를 배우지도 않으면서 난세에 별 쓸모없을 것 같은 경서만 공부하는 이전이 특이했고 그러면서 기특했던 모양이다.
조조는 그러던 차에 이건이 죽고, 그 뒤를 아들 이정에게 맡겼으나 이정도 일찍 죽어버리자 조카인 이전에게 이건의 사병을 맡긴다. 그러면서 하나의 안전장치를 해준다. 영음의 현령으로 삼은 것이다. 만약에 전혀 다스려보지 못한 병사를 다스리라고 느닷없이 주어버리면 백면서생인 이전으로서는 당혹스러웠을지 모를 노릇이다. 따라서 조조로서는 경서를 배운 이전을 영음의 현령으로 삼으면서 정치력과 사람 다스리는 법을 배양토록 한 것이다. 이러한 조조의 이전에 대한 관심은 이전을 더욱 학문에 정진하고 백성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패막이가 된다.
이전이 영음현령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을 무렵 조조와 원소간 관도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밀고당기는 이러한 대치상태에서 이전은 영음에서 자신의 친혈족과 사병들을 거느리고 조조군에게 군량과 비단을 수송하며 조조군의 후송을 든든히 맡는다. 이러한 도움이 조조로 하여금 원소를 물리치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조조는 관도 근방에 이전을 배치시키고 자신의 군대로 여양에 남은 원소의 잔여병력을 몰아세워 나갔다. 이전은 자신의 주둔지인 안민에서 조조가 공격하는 여양진영까지 수로를 통하여 군량을 수송하며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양의 원소 잔여병 중 막내아들 원상이 군대를 이끌고 수로의 상류를 장악하게 하므로써 조조의 군량 수송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조조는 이전에게 수로가 끊겼으니 육로로 수송하라고 영을 내린다. 조조의 영을 받은 이전은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육로로 수송을 하게되면 시간과 거리, 병력이 3-4배가 들면서 도리어 조조군의 발목을 잡는 우를 가지게 된다고 판단했다. 이전은 정욱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여 육로로 가느니 수로의 상류를 막고 있는 원상의 군대를 공격하는 것이 더욱 이롭다고 피력하고 상류의 원상 군을 이길 수있는 방책까지 설파하자 정욱은 그 방법이 옳다고 격려해 주었다. 이전은 사병들에게 ‘전장터에서는 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군주의 명은 어겨도 된다’라고 설득하여 수로의 상류를 기습으로 공격하여 원상군을 몰아붙여 패퇴시켜 조조의 후방 수송을 다시금 견고하게 장악했다. 이후로도 이전은 각종 전투에서 자신의 사병을 이끌고 큰 공을 세우며 조조의 신임을 얻는다.
3. 조조도 함부로 못 건드린 세력
조조의 신임이 높아진다하더라도 이전은 자신의 사병을 조조군에 흡수시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조가 강제로 사병을 혁파한다면 각종 전투에서 경험이 풍부한 이전의 사병을 쉽게 장악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문제다. 이는 또다른 내부 분열, 혹은 내부 반란마저도 가져올 수 있는 문제가 된다.
더구나 이전은 유비와의 박망파 전투에서 하후돈이 우습게 보고 덤비자 매복과 화공을 경계하라 누차 일렀지만 하후돈은 백면서생인 이전의 말을 우습게 듣고는 성급하게 덤볐다가 만판으로 깨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전몰당하려던 하후돈군을 구해준 것이 바로 이전이었다. 조조로서는 이전 앞에 고개를 들 낯이 없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조조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 병사가 아닌 이들이 자기 수중에 있으니 잘 부리면 겁날게 없는 강철검이지만 잘못 부리면 자신의 심장을 가르는 비수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조조로서는 이전이 있으므로하여 편히 잠을 잘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조가 원소와의 관도전을 승리로 이끌고 하북을 평정하자 이전은 사병들을 거느리고 자신의 거주지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조조에게 위군으로 옮겨달라 간청을 한 것이다. 위군이 어디인가 기주에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조조가 막바로 차지하여 아직 민심도 아우르지 못한 지역이다. 그 지역을 이전이 다스린다고 하니 조조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지경이지 않는가. 더구나 조조의 병사도 아니고 이전의 사병들로 이뤄져있는데 조조로선 용납할 수 없는 노릇이다. 조조는 이전을 불러서 조용히 부른다.
그대는 경순*을 따라하고자 하는가?
* 경순 : 한복의 부하인 경무와 민순을 이르는 말. 기주목인 한복이 기주를 원소에게 바치려하자 결사반대한 인물이다. 한복이 기어코 기주를 원소에게 바치자 원소 암살계획을 세운다. 원소가 기주에 입성하자 둘이 칼을 들고 덤벼들었으나 안량과 문추에게 죽었다. 조조가 이렇게 물은 것은 기주를 장악한 조조에게 반기를 드려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을 내비친 것이다.
이에 이전은 차분하게 대답한다.
신은 노둔하고 겁많으며 공은 보잘것 없는데, 작위와 주군의 총애가 두터우니, 실로 마땅히 제 온 가솔들과 그 힘을 펼쳐야 하고, 아직도 천하의 난세가 그치지 않았는데, 마땅히 기주 땅의 안을 채워 사방을 제어하려는 것이지, 경순을 따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조조는 이전을 위군에 머무르라 허락을 했다. 그러나 허락이 흔쾌한 허락이겠는가. 이전의 사병의 세력이 원체 강성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관도에서 원소와의 싸움에 전력을 다 한 후니 설사 이전을 제압하려고 해도 제압할 군사력이 조조에게 있을 리가 없다. 이주한 친,혈족과 사병집단이 3천가구가 넘는다고 하였으니 말 다했다. 이전으로서는 타이밍을 제대로 잡은 것이고, 조조로서는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맞은 것일 것이다. 뭐 그렇다고 이전이 자신의 독보적인 세력을 만든 것은 아니다. 본래 그럴 생각이었다면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킬 기회는 많았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이전에게 그런 기미가 없다는 것은 나중에 오나라의 공격에 대비하여 합비에 주둔한 것에서 그의 마음을 알수 있다.
4. 이전의 성품, 알 수 없는 요절
이전하면 장료와 악진과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평판이 자자하다. 조조군내에서도 그들의 사이가 원체 안좋아서 유명했다. 이 셋이 어떻게 사이가 안 좋은지는 파악할 수 없으나 이전이 왜 셋과 사이가 안 좋았는가는 능히 판단할만 하다. 이전은 본래가 호족세력이다. 그리고 조조의 부하로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사병을 가진 세력으로서 조조에게 대우를 받은 셈이다. 그리고 이전은 경서를 배운 인물이며 병서는 재미없다 하여 배우지 않은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는 문에 치중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에 대해서 학문을 좋아하고 유학의 아름다움을 귀히 여기고 다른 장수와 공을 다투지 않았으며 선비를 공경했다는 평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인물은 대개 문을 숭상하고 무를 업수이 여긴다. 이전은 자신이 무장이라고 여기지 않앗을 성 싶다. 자기 세력의 장이지 조조 수하의 장수라고 여기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니 조조에게 위군으로 가겠다고 강짜를 부린 것 아니겠는가. 그런 성향의 이전이니 문관들에게 예를 다해 받들고 그러면서도 부족함이 없나 항상 자신을 반성했다는 기록이 그의 성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이전이니 무장 알기를 우습게 안 것이다. 더구나 목숨을 내놓고 악으로 깡으로 싸우는 악진이나 줏대없이 여기 저기로 떠돌아다닌 장료와 같은 경우 이전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무식한 장군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런 이전이 느닷없이 36세라는 나이로 사망을 한다.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전쟁에 참전하여 죽은 것도 아니다. 정사의 기록에서는 합비전 이후 그냥 사망했다라고 나오며 연의에서도 합비전 이후 이전의 생사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 궁금하다. 느닷없는 죽음이라니. 삼국지에 요절은 많지만 방통, 태사자의 경우는 전사이며 주유, 손책, 곽가의 경우는 병사다. 그런데 이전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
조조에게 이전과 같은 호족세력은 눈엣가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관도에서 원소를 간신히 물리쳐 기주를 얻자마자 이전은 자신의 가솔을 이끌고 위군으로 가면서 조조의 속이 제속은 아니었을 것이다. 견제하고 밀어내려고 해도 이전의 세력이 보통 세력은 아니니 이도 건드릴수가 없고 하니 조조가 혹은 암살을 한 것은 아닐까, 독약을 보내 죽인 것은 아닐까, 아니라면 순욱에게 빈 밥공기 보낸 것처럼 이전이 자결하게끔 어떤 술수를 쓴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전이 죽고나서 후사를 이정이 이었지만 이전의 사병세력들은 고스란히 사라져 버린다. 그네들이 어디 갔겠는가. 조조에게 흡수되었거나 아니면 싸그리 죽었거나 안 그랬을까. 조조에게 흡수되지는 않았을 성 싶다. 근 40여년을 이씨 가문의 사병으로 활약을 한 그네들이 한 순간에 조조에게 투항하지는 않았겠지.
이전의 마지막은 이래저래 생각을 해보건대 왠지 그의 죽음이 조조와 관계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것은 필자만의 비약적인 생각일까?
Written by 나그네
# by | 2008/01/19 00:06 | ◈삼국지관련논제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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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경순을 따라함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이전의 모습에서 '광무제 개국 공신 경순'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을런지요.
기주와 관계 있는 한복과 그 한복을 위해 원소를 죽이려 했던 경무와 민순의 경우 그 스타일을 대비하면 아마도 이쪽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광무제의 경순의 경우와 한복의 경무와 민순의 경우를 비교해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황이 아무래도 조조의 의심을 드러내는 부분이니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