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7일
[蜀] 변함없는 성실성, 꾸준한 자기발전 - 원검 요화

0. Profile
자는 원검, 양양 출신. 200년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로 가는 관우를 만나서 종군을 청했으나 산적출신이라 관우의 거절로 처음에 실패했다. 211년 형주에서 유장의 촉으로 입주하는 유비군에 투항하여 관우 휘하에 배치되어 양양을 수비하면서 연을 맺었다. 213년 방통의 죽음으로 제갈량이 서천으로 가자 관우를 보좌했다. 219년 관우의 번성 공략에 선봉을 맡았으며 언성을 수비하다가 서황에게 패해 빼앗기고 다시 사총을 수비하다 서황에게 또 뺑닷겨 관우에게 도주하였다. 상황이 위험하여 맹달과 유봉에게 원군을 청하러 상용으로 떠났으나 거절하여 성도로 갔다. 227년 제갈량을 수행하여 북벌에 나섰다. 228년 진창성을 공격하다가 학소에게 패했고 학소구원군 왕쌍에게도 패하여 도주하였다. 230년 사곡으로 출진하여 조진의 부장을 베었고 234년 5차 북벌에서는 곽회를 구원하러 출병한 사마의를 기습하여 승리하였다. 253년 강유의 북벌군 출정에 선봉으로 참여하였다. 258년 등애와 강유의 대결에 등애의 기산 뒤편을 공격하여 선봉의 목을 베었다. 263년 종회와 등애의 공격에 검각을 보호했으나 성도가 함락되어 강유와 함께 종회에게 투항하였다. 264년 종회를 따라 성도로 돌아와 병으로 은둔하던 중 사망하였다.
1. 꾸준한 모습
우리나라 사람은 꾸준한 사람을 이르러 ‘성실하다’라고 말을 한다. 필자는 이 ‘성실하다’라는 말을 무지하게 싫어하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사람이 어찌 한결같이 꾸준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윗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한 수단이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의 성향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학생일때 윗사람이란 ‘부모님’이고 ‘선생님’이다. 윗사람이 보았을때 성실하다라는 것은 한 자리에 앉아서 꾸준하게 책을 보고 공부하는 모습을 일컫는다. 화장실도 잘 가지 않으면서 시킨 일은 묵묵히 꾸준하게 앉아서 행하는데 어찌 안 이쁠 수가 있을까. 사회에서, 직장에서 성실함은 책상에 앉아서 윗사람이 시킨 일을 묵묵히 아무 말없이 해내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 사람을 성실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 난 그런게 싫다. 어찌 한 자리에 하루종일 앉아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다. 책상위에 하루종일 앉아있는다고 공부를 잘하는게 아닌데 왜 책상위에 하루종일 앉아있는가 말이다. 가끔 머리에 바람을 쐬러 마실도 나가고 먹을거리도 찾아 먹고 그러면서 공부해야 그것이 실력이 느는 것이다. 물론 천성적으로 책상머리맡을 떠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는 극히 드물다. 고3 시절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공부만 해야하는 시기라고 말을 하는데 도리어 그렇게 하면 될래도 안된다.
즉, 천성적으로 책상머리맡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책상머리맡을 떠나지 않는다거나 회사책상머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윗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실성’이다. 그리고 이 성실성은 이 사회에서 주로 사람을 평가함에 결과물을 보고 판단하는 것과는 모순되게 과정성으로 평가를 매긴다. 그렇기에 성실과 능력은 별무관계로서 평가된다. 재능은 없는데 사람이 참 성실하다라는 말은 ‘칭찬’이다. 그리고 그 성실함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리는데 있어서 제1조건이다. 지금도 회사 인사부에서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타인을 압도하고도 남는 재능이 없다면 차라리 성실한 사람을 뽑는 것은 다 그런 이유다. 성실한 사람은 로봇에 진배없다.
그렇다면 요화는 어떤 인물인가. 꾸준한 성실함을 보이는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 산적이었다. 산적이라지만 아마도 후한말 밑에 계급으로서 살기가 힘들어 황건적이 난을 일으키자 황건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만약 전형적인 산적이라면 그런 산적을 노도와 같이 몰아쳤던 황건적의 그 세력을 소규모 산적이 남아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황건의 수하였을 것이고 황건이 소멸되자 산적으로 변이된 것이리라.
하여간 요화는 그렇게 산적질을 하는 중에 ‘관우’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을 듣고는 그를 존경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관우가 조조를 떠나서 유비에게로 가려고 오관참장을 하는 장면에서 만나 부하로 삼아달라 이르면서 극적인 첫 만남을 가진다. 하지만 유비의 아내들을 데리고 도주하는 마당에 산적출신의 불확실한 인물을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관우는 거절한다. 이에 요화는 다시 한번 권한다. 부하들이 산적이라 싫으시면 자기만 가겠다면서 말이다. 황건의 난이 벌어지던 그 시절부터 함께하던 부하들 - 물론 아닐수도 있다 - 을 버리고서 귀의하겠다니 이는 요화의 관우에 대한 애정이 깊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관우는 그럴 수 없소라면서 갈길을 재촉하고 요화는 다시 산적질로 연명을 한다.
다시 무슨 짓을 하면서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 부하들을 데리고 그렇다고 농사를 지었을리는 없고, 갈곳없으니 해산할 수도 없을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듯 산적질로 연명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11년후 유비가 익주로 입주하려고 하자 다시 유비에게 투항을 한다. 유비는 그런 요화를 관우 휘하에 배치시킨다. 요화가 관우를 대면치 않고 유비군에 투항함은 혹여라도 관우가 받아주지 않았을까함이요, 관우휘하에 배치됨은 유비에게 관우휘하로 넣어달라 청했기에 그랬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은 쉽게 들지 않는가. 사람이 11년 내내 저리 꾸준하다면 윗사람으로서는 이쁠 수 밖에 없겠다.
설사 요화가 유비군에 투항안하고 형주의 관우에게 직접 갔다하더라도 관우는 받아주지 않았겠는가. 11년 내내 자신만 바라보고 부하가 되기위해 살아온 이를 어찌 야멸차게 내칠 수 있겠는가 말이다.
2. 처음부터 차근차근
능력이 없다손 치더라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이들을 가장 좋아하는 이가 선생들이다. 하나 가르치면 100가지를 아는 천재같은 경우는 선생 자체가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감히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는 알고 나아가 둘 정도는 아는 이를 제일 가르칠 맛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유독이 이뻐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아이의 능력이 성장하는 것이 내 덕이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가짐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너무 뛰어나면 내 능력이 아니고 너무 떨어지면 그 녀석의 능력 탓이지만 전혀 몰랐던 것에서 하나하나 알아가고 거기다가 추가로 하나를 더 알아가는 만큼 이쁜 학생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화는 관우의 이쁨을 살 수 밖에 없었을 터이다. 요화는 본래가 산적출신. 산적이 무슨 병법이 있을 것이며 싸움을 해봤자 얼마나 잘 싸웠겠는가. 그런 요화는 유비군에 들어와서는 그렇게 흠모하던 관우 밑에서 배워갔을 것이다. 하지만 요화가 머물렀던 동안의 형주는 고요했던 동네다. 요화가 전쟁을 배워나갈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처음으로 관우가 번성을 공략함에 선봉을 세워서 사총을 지키게 하지만 언성으로 쳐들어온 서황을 맞아 싸우다가 지키지 못한데다가 원군으로 와준 관평과 사총을 죽을 힘을 다해 막아서지만 또다시 서황에게 깨져서는 관우에게 돌아간 것이다. 이것이 요화의 실력이다. 물론 서황이라는 걸출한 무장의 상대가 안된다는 것도 있지만 요화가 사총에서 서황을 못 막았기에 관우가 후미를 공격당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상황으로 인해 관우가 점점 밀리자 원군 요청으로 요화를 상용으로 보낸다. 하지만 이미 승기는 기운 상태라 맹달이나 유봉이나 원군 요청을 거절한다. 요화는 눈물로써 호소하지만 안된다는 맹달 앞에 요화는 다시금 성도로 발길을 돌린다. 요화가 살아남은 것은 바로 이 이유다. 관우와 함께 싸운 것이 아니라 원군 요청으로 외지로 나갔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성도에 도착했을때 이미 맥성은 함락당한 후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그 급박한 상황에서 성도의 유비에게 찾아갈 생각을 한 요화는 생각이 없는 셈이다. 그때까지 관우가 버티리라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그토록 흠모하던 관우가 사지에 빠졌는데 나몰라라 할 요화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요화의 행태는 관우를 더욱 사지로 몰아넣어버리는 이유가 되어버렸다. 처음에 요화는 병사 운용도 전쟁에서 머리 굴리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평범한 장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제갈량을 따라서 북벌에 나갔을 때도 진창성에서 왕쌍에게 두 번이나 연달아 깨질 정도로 그의 입지는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우 휘하에서도 제갈량의 휘하에서도 선봉장을 맡아서 했다. 이는 그의 꾸준한 성실성이 윗사람에게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누누이 이야기를 한다. 능력이 있는데 기회를 안준다고. 기회를 안 줘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요화는 그 성실함을 인정받아 선봉을 맡은 것이다. 평범한 이의 꾸준한 선봉의 기회는 능력의 발현도 되지만 능력의 업그레이드도 되는 것이다. 그 숱한 싸움을 하면서 요화의 전투능력도 향상된다. 4차 정벌에서는 위군 부장을 죽였는가 하면 5차 정벌에서는 원군 온 사마의의 뒤를 기습공격하여 사마의를 도망치게까지 할 정도가 되었는가 하면 그러한 그의 능력은 이후 강유의 북벌군에 참여하여서도 선봉을 맡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강유의 북벌군에서의 선봉은 성실성이 아닌 능력 인정인 측면에서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제갈량 수하에서의 꾸준한 북벌 선봉의 경험이 그를 강유의 북벌에서도 선봉으로 서게 한 것이다.
특히 강유의 북벌에 관해서는 상대의 계략을 미리 파악하여 강유와 상의하여 상대의 계략을 깬 것은 요화의 꾸준한 자기관리를 향한 노력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그 상대란 것이 강유가 이기지 못한 등애였다는 점에서 그의 지략의 발전은 찬란하다 못해서 눈부시다. 처음에 등장은 산적으로 등장해서 첫 전투에서는 마냥 깨지기만 하고 상용으로 지원갔다가 거절하면 바로 다시 돌아와서 싸우지 않고 유비가 있는 성도까지 가서 원군을 요청할 정도로 멍청했던 요화는 점차로 발전하여 사마의를 퇴각시키고, 등애의 계략을 역으로 이용하여 깨는 등 그의 활약을 보노라면 내가 가슴이 뿌듯해진다. 필자는 왠지 이 장면에 이르면 요화가 자랑스러워진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3. 주창의 모델
관우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주창이다. 주창의 부장중의 부장이고, 관우가 사로잡히자 맥성에서 뛰어내려 죽은 인물이다. 그런 주창의 초반부 이야기는 지극히 요화의 이야기와 동일하다. 주창은 황건적 출신으로서 관우를 흠모하고 있었다. 누누이 그의 부하가 되기를 기원하는데 황건적 잔당 토벌에 만나서 싸우게 된다. 관우를 흠모하지만 그의 외모를 몰랐던 주창은 관우와 싸우고 이에 부장이었던 배원소가 저분이 관우님이시다라면서 투항하면서 부하가 된다. 요화랑은 다른 모습이다. 요화는 11년이나 걸렸다. 그런데 주창은 단번에 관우의 마음에 들었는지 임관해버린다. 그리고 어느 누구의 휘하에 있지 않은채 죽을때까지 관우의 부장으로 생을 마감한다. 요화는 관우가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의 곁을 떠나서 생을 함께 하지 못했을 뿐 관우가 죽을때까지 그의 수하에 있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따라 죽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창이라는 인물, 정사에 없고 연의에만 나오는 인물이다.
나관중은 요화의 이야기를 보고서 주창이라는 캐릭터를 생성시킨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관우라는 이를 따라서 함께 죽는 이도 있어야 할 절대복종적인 캐릭터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서 주창이라는 캐릭터를 만든 것이지 않을까. 훗날 무신으로 불리고, 재신으로 불리는 관우가 죽음에 어느 부장도 함께 따라 죽지 않는다면 그의 명성에 흠이가지 않겠는가. 나관중으로서는 그런 관우의 명예를 높여주고 부장들의 목숨바친 충성을 바친 인물이 있음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주창은 요화의 전반부만 뚝 떼어내 요화의 등장을 없애버린채 주창이라는 캐릭터로 올인 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연의에 요화의 등장이 초반에 없다가 관우 죽고나서 그의 활약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가 아닐런가 생각을 해본다.
Written by 나그네
# by | 2008/01/17 22:36 | ◈삼국지관련논제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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