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뒤죽박죽이 된 삼황과 오제

 1. 이게 뭐야?

반고의 신화를 지나서 중국의 신화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딱 드는 생각이 '이게 뭐야?'라는 뒤죽박죽 생각이다. 일본, 한국처럼 그 이후 체계적으로 흘러감이 없이 반고 이후 뭐하나 정해져서 굳혀진 것이 없다. 중국인들은 자기네들의 시작으로 일컫는 삼황오제에서 삼황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나 살펴보자.

사기에서는 삼황을 '천황,지황,태황'이라 설명한다. 물론 사기는 시작을 오제의 시작점인 '황제'부터 기술하므로 신화시대인 삼황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도>에서는 삼황을 '천황,지황,인황'으로 꼽고 있는가 하면 <상서대전>에서부터 수인,복희,신농을 삼황이라 소개하면서 우리 귀에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하지만 <백호통>이라는 책에서는 복희,신농,축융을 삼황으로 꼽으며, <춘추운과추>에서는 복희,여와,신농을 삼황으로 꼽는다. 여기에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대부분이 '오제'로 꼽는 황제헌원을 <상서>에서는 복희,신농과 함께 삼황으로 삼은 것이다. 상서에서 오제는 그럼 누구란 말이지?

이미 삼황은 그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통일된 기록과 일관된 기술이 없이 그저 날림으로 자기네 입맛에 맞게 작위적으로 '삼황'운운 하는 바이다. 이런 형편이니 중국신화는 '반고'이후 뒤죽박죽 처리되어 얼렁뚱땅 오제인 '황제헌원'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럼 왜 '삼황'의 신화가 왜 뒤죽박죽인지 살펴보자.

2. 인류의 시조 - 태호복희와 여와

태호복희 하면 인류의 어머니인 여와가 동시에 등장한다. 이네 둘은 반고 죽은 이후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 오누이 신이다. 여기에서 여와가 '인류'를 만들어낸 설에 대해서 두가지가 전해져 오는데 이를 살펴보자.

첫째. 오누이간 사랑으로 아이를 낳다.

일명 근친상간이다. 지금이야 생각도 못할 노릇이지만 각종 신화를 보면 근친상간은 빈번하다. 딱히 다른 이가 없지 않은가. 반고 죽은 이후 복희와 여와는 인류를 만들어야 하고 그럴려면 둘이 사랑을 하여 아이를 생산해야 했다. 그런데 오누이지간이라 복희가 망설이고 있었다. 이에 여와가 꾀를 내어 '제가 도망칠터이니 오라버니가 저를 잡으시면 오라버니의 뜻에 따르겠어요'하고 도망쳤단다. 복희는 여와의 뜻을 알아채고는 도망가는 여와를 잡아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것이 '인류'라는 이야기다.

이거, 수상하다. 왠 신화시대에 '오누이간 사랑'에 대해서 남의 눈치를 살피는 거지? 이거 유교성립 이후에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사회인식때문에 그렇게 바꾼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여와가 진흙으로 인간을 빚다.

이것이 인류 생성에 관해서 대체로 다수가 믿고 있는 바다. 처음에 여와가 세상을 살다보니 오라비와 둘 뿐이라 심심한거다. 그래서 자기네를 닮은 인간을 진흙으로 빚기 시작했다. 다 만들고 숨결을 불어넣으니 움직이기 시작해 인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재미붙인 여와는 오랜 시간 흙을 빚어서 인류를 만들었으나 넓은 세상을 인간들이 채우기에 시간이 턱도 없이 부족한 것이라.

여와는 자기의 긴 머리채로 진흙을 냅다 후려쳐서 진흙 덩이들이 사방으로 튀자 그것들이 모두 인간이 되어서 세상에 득시글 거리게 되었고, 그로인해서 정성스레 빚은 인간은 '귀인'이 되고, 머리카락으로 후려쳐 마구 생기게 한 인간들은 '천민'이 되었다라는 이야기다.

이건 무슨 노예제, 사회관료제가 생기고 나서 생긴 신화같지 않은가. 인간에게 귀천이 있는데 이는 인간들이 만든게 아니라 신들때부터 미리 정해져있었다라는 어떤 하나의 '결정론'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이런 여와를 삼황으로 삼은 곳은 <춘추운과추>라는 책에서만 다루고 있다.

복희는 여와가 인류를 만들때 천체의 흐름을 파악하여 '주역 8괘'를 만들어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그리고는 여와가 만든 인간들에게 짐승을 사냥하여 먹지 않고 '사육'하여 기르고 잡는 방법, 물고기를 잡을때 '그물'을 사용하는 방법, 철로 무기를 만드는 방법, 언어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분명 그렇다면 복희는 '철기시대'인물이다. '청동기'가 아니라는 말이지. 그런데 중국역사는 거꾸로 돌아가는가? 복희의 나중 훗대의 사람인 황제가 치우와 싸울때 치우가 '구리'무기를 사용하는 것에 골치를 썪다가 나중에 나침반과 철기무기를 발명해 사용하여 잡은 것을 보면 중국은 철기->석기->철기 로 되었다는 이야기다.

청동기는 치우가 썼고, 그렇다면 황제네도 '청동기'를 썼다면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기에 황제는 '석기'였다.'철기'였다면 청동기의 치우군에게 그렇게 당할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중국은 세계사에서 '청동기'를 지나쳐서 '철기'로 간 단 하나밖에 없는 문명 발전을 이루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3. 삼황에 안 빠지는 - 염제 신농

염제 염제 하면 왠지 '불의 제왕'같은 의미가 들어서 불의 사용법을 인간에게 가르쳐 준 것 같은데 신농은 이름에서처럼 '농사'를 가르쳐 준 이다. 농사뿐인가 세상의 모든 풀종류를 먹어서 '독초와 약초'를 구분해서 인간들에게 필요한 약초를 따로 골라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르던 짐승 중에서 말과 소를 농사에 사용한 인물로써 인류에게 새로운 혁명을 가져다 준 인물이다.

신농은 역사 발전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신석기 혁명'을 가져다 준 인물이다. 전시대 사람인 복희가 '철기'를 만들었는데 다시 신농은 '신석기'로 역사를 퇴보시켰다. 참 아리송한 부분이다.

염제 신농은 삼황의 마지막이며 동시에 오제의 시작인 황제와의 패권 다툼에서 패하여 물러난 몰락한 인물이다.

4. 여기서 궁금한 인물 - 수인

자 그럼 <상서대전>에서 삼황의 하나로 꼽은 수인은 누구인가? 수인은 인류에게 불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 인물이다. 벼락 떨어진 나무에서 불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화산이 터진 산의 숲에서 타는 불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일종의 그리스 신화에서의 프로메테우스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기록은 이게 다다. 불의 사용법과 불에 음식을 구워먹는 것을 가르쳐 준 위대한 인물임에도 기록이 없다. 딸랑 그랬다라는 이야기만 있다. 여기에 의문이 있다.

자, 잘 살펴보자. 반고 죽은 이후 최초로 나타난 신이 복희와 여와다. 여와는 인간을 만들었고, 복희는 인간에게 말을 가르쳤다. <불>은 가르치지 않았다.

인류 역사적으로 인간이 '언어'를 배운 시기가 빠른가? '불'을 배운 시기가 빠른가? 당연히 생각할 것도 없이 '불'을 배운 시기가 빠르다. 불을 배우고 그리고 언어를 배운다. 이것이 세계사적 흐름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수인은 '복희'와 '여와'이전의 인물이 된다. 즉, 반고 이후 최초의 신은 '복희'와 '여와'가 아닌 '수인'이라는 말이 된다.

만약 그도 아니라면 기독교 창세기에서 나타난 오류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

"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어 낙원에서 쫓겨났다. 농사를 짓고 살던 아담과 이브는 이웃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

아담과 이브가 야훼가 최초로 만든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찌 에덴에서 쫓겨난 그 땅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을까? 어찌 한데 어울려서 살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신화에서 수인의 위치는 이처럼 '얼토당토'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5. 오제도 엉망이다.

<예기>에서는 태호복희, 염제신농, 헌원황제, 소호금천,제곡고신으로 되어 있으며
<사기>에서는 헌원황제·전욱고양,제곡고신,제요도당,제순유우를 오제라 하며
<상서>에서는 금천소호,전욱고양,제곡고신,제요도당,제순유우를 오제라 일컫는다.

대체로 보면 삼황은 '신'이고 오제는 '인간'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예기'는 복희와 신농조차 인간으로 본다는 것이며, '상서'는 헌원황제를 '신'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 이리 엉망일까?

기준이 없고, 확실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냥 있는대로 갖다 붙였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반고'이야기는 후한말 삼국시대 오나라때 생긴 신화인데 그 이야기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인 춘추전국시대와 한대의 기록이 서로 맞물릴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주자면 헌원황제는 소전씨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으며, 동시에 소전씨와 유교씨의 딸이 결혼하여 낳은 자식이 염제신농이다라는 기록도 있다는 것이다.

즉, 친형제지간이든 이복형제지간이든 둘은 '형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농씨의 기록에서 보면 '기원전 28세기 사람'이라고 되어있다는 부분과 황제의 기록인 '기원전 2704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2697년 제왕이 되었다'라는 기록과 매치시켜보면 맞지가 않는다. 더구나 신농은 120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황제와의 싸움에 패하여 남방으로 밀려난 신농씨가 제아무리 120세까지 살았고, 더군다나 신농씨가 bc28세기 사람이므로 bc2800년에 태어났다고하더라도 황제가 태어난 2704년이면 자그마치 196년 후가 된다. 즉, 맞지가 않는다는 말이다.

요순 이야기는 원체 많고, 거의 일치되어있는 부분이 많아 따로 살펴보지는 않겠으나 중국의 삼황오제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는 아주 이상하게 뒤죽박죽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신화라는 것이다.

어째 이리도 엉망인지 골치가 아프다.

Written by 나그네

by 나그네 | 2007/12/05 20:05 | ◈중국역사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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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三天포 at 2007/12/05 21:05
중국 특유의 일화를 만들어 쓰는 일 때문에 생긴일이 아닐까 싶네요
Commented by 별밤 at 2007/12/06 15:01
중국의 신화와 전설 역시 수많은 '이민족'의 항쟁과 융합(혼혈도 포함하는)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한단고기' 식의 '우리민족 제일주의'에 경도된, "중국(과 인류)의 원천은 조선족"이라는 평가는 중화주의와 마찬가지로 접어두고, 중국 역시 다민족세계라고 생각해 보면 전설과 전설 사이의 모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나그네 at 2007/12/06 21:55
다문화 다민족의 집합체이기에 그네들이 하나로 통일된 합심을 이끌 필요가 아마도 있었던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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