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2일
조자룡 헌창 쓰듯 한다???

제갈량의 첫 승전보 박망파!! 뭐, 대개의 독자들은 제갈량이 박망에서 승리하고, 장판에서 승리하고, 적벽에서 승리하고, 형주 4군을 먹고, 익주를 먹고 하는 동안 ‘한번도 패배를 모르는 지모의 화신’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박망과 장판이라는 전투는 제갈량이 이긴 전쟁이 아니라 ‘패배를 모면’한 전쟁이다. 전술에서 승리한 것이지 전략적 차원에서의 승리는 아니라는 셈이다. 적벽은 제갈량을 비롯한 유비의 승리가 아니라 오나라의 절대적인 승리이며, 형주 4군을 차지한 것은 소군벌 타도에 불과한 일이며, 익주 입성의 승리는 순전히 ‘방통’의 공이다. 제갈량은 오로지 ‘남만정벌’과 ‘북벌’뿐이며, 북벌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으니 남만정벌만 ‘제갈량’의 공이라 할 수 있겠다.
아,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제갈량 별거 아니다’를 이야기 하는게 아니다. 형주에서 조조의 공격을 받고 도주하면서 박망과 장판에서 조조의 추격을 ‘저지’시킨 것만 해도 그게 어디인가. 일말 한줌의 병력도 없는 상태에서 최대 국력을 자랑하는 조조의 추격을 뿌리친다는 그것이 그리 만만한게 아니다. 그리고 ‘병력’도 없는 유비의 세력으로서 ‘오나라’와 동맹을 성공시키는 것은 또 쉬운가. 그렇지 않다. 형주 4군도 각 군현에 맞게 장수를 보내어 토벌케 한 것도 지모의 승리요, 방통이 익주 입성에 전념할 수 있게 형주를 관우와 함께 방비한 것 역시도 치하할만하다. 단지 내가 제갈량을 싫어라 하거나 좋아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서두가 이리 기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아, 박망의 뒤를 이어 ‘삼국지 최고의 하이라이트’라 불리울만한 장면에 대해서 논하려고 한다. 물론 독자들마다 삼국지 최고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모두가 틀릴 것이다. 하지만 가슴 뭉클거리게 하고 핏줄 불끈 솟게하고 근육이 꿈틀거리게 하는 장면은 그리 흔하지 않다. 더군다나 남자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온몸에 전율이 솟게할 만한 것은 주로 일당백의 장면에서 그러한 전율을 느낀다. 괜히 무협지가 인기있는가 말이다. 하수가 점차로 절대무공을 익혀가면서 수십대 수백대 일의 싸움을 이겨나가는 것이나 영화에서 주로 쓰는 17:1의 전설이라든지, 시라소니나 김두한의 수십대 일의 맞짱에 열광하는 것이 남자들이다. 삼국지는 다분히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런 남자들의 이야기에 수십, 수백대 일의 장면이 있는데 거기에 어디 열광하지 않겠는가. 그런 장면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장판이다. 그리고 그 장판에는 두명의 사내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 다루고자 하는 인물은 조운이다. 물론 장비처럼 고함 한마디로 적들이 무서워서 도망가는 카리스마도 좋지만 가장 스펙타클한 장면은 조자룡이 백만대군을 휘저으며 유선을 구해오는 그 장면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들 흔해빠지게 듣고 알고 있는 조자룡의 영웅담이 아니다. 조자룡의 영웅담 따위는 별로 관심이 없다. Anti-Hero 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뭐하러 장판의 조자룡 이야기로 시작을 했는가. 바로 그것이 이 글의 제목이다.
‘ 조자룡 헌 창 쓰듯 한다 ’
이 속담은 조자룡이 헌창 쓰듯이 잘 쓴다라는 의미이다. 익숙하다거나 잘 다룬다거나 하는 그런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왜 헌창이냐? 당연히 헌창이지. 오래 두고 쓰어 손에 익은 창인데 그럼 ‘헌 창’이지, ‘새 창’이겠는가. 새 신발을 신으면 발 뒤꿈치가 까지듯이 오래된 물건일수록 손에 잘 익는다는 말이다. 설마 ‘헌 창’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중요한 것은 조자룡의 무기 ‘창’에 대함이다.
왜 창인가? 조자룡이 창을 들었나? 창을 잘 썼나? 조운하면 창이 생각나기는 한다. 왜, 무엇 때문인가. 일본 게임 업체 코에이의 ‘진삼국무쌍’이란 게임에서 조운의 전용무기가 ‘창’이기 때문이다. 왜 게임 때문인가라고 물을 터인데 ‘삼국지’를 좋아하는 이들치고 ‘코에이 삼국지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진삼국무쌍이라는 게임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네들도 ‘조운’하면 창이라는 무기를 생각한다. 왜인가?
.. 누군가 살펴보니 한 사람은 원소의 장수인 문추이고, 또 한 사람은 낯선 장수였다. .. 소년장군의 무예는 출중하여 천하의 문추가 소년의 칼놀림에 쩔쩔매고 있는게 아닌가.. (장정일의 삼국지;김영사)
.. 소년 장군은 효용이 무쌍했다. 범같은 장수 문추와 싸운지 60여 합에 승부가 나지 아니했다.. (월탄 박종화 소설 삼국지;대현출판사)
.. 문추와 소년장수는 곧 싸움이 붙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위풍이 당당하면 문추는 소년 장수에게 명성이 무색할 지경으로 몰리고 말았다. 그들이 싸우기를 칠십합, 팔십합! .. (삼국지 1 (도원에서 의를 맺다) 정비석 역;은행나무)
.. 더욱이 놀라운 것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귀신같은 창솜씨였다. 원소의 으뜸가는 장수를 맞아 싸우는데도 오,륙십합이 되도록 조금도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 (삼국지 2 (구름처럼 이는 영웅) 이문열 역;민음사)
그 어디에서도 조운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창’을 썼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오직 ‘이문열’이 자신의 삼국지에서 ‘귀신같은 창솜씨’였다라고 써놓은 것 뿐이다. 이문열의 삼국지가 무엇인가? 대한민국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그 책 아닌가. 삼국지 ‘붐’을 조성한 장본서. 그러한 책이다. 그런데 왜 이문열은 ‘창’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바로 저 위에서 논한 ‘조자룡 헌창 쓰듯 하다’라는 말에서 인용하여 ‘창’이라고 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그런데 장정일은 왜 ‘칼’이라고 했지?
자, 그럼 조운이 그 이미지를 강렬하게 독자에게 각인시킨 그 장면. 장판파에서 쓴 무기는 그럼 ‘창’인가?
.. 조운은 보검(하후은에게서 빼앗은 청홍검;필자 주)을 거두어 꽂은 뒤 다시 창을 들고 겹겹이 둘러쌓인 적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 (삼국지 5 (세번 천하를 돌아봄이여) 이문열 역;민음사)
.. 조운은 말을 달려 적장에게 창을 겨누었다. 적장은 조운을 맞아 싸웠으나 조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장정일 삼국지 5(적벽대전) 장정일;김영사)
.. 조자룡의 한번 쓰는 창에 찔려 죽은 사람은 조조의 몸을 호위해 모시는 배검장 하후은이었다 .. (월탄 박종화 소설 삼국지 4 - 삼파전국, 박종화 ; 대현출판사)
장판에서 조운이 그 대활약을 펼치면서 이미지를 각인시킬때 손에 쥔 무기가 바로 ‘창’이었다. 창이 부러지면 주위의 창을 들어 싸우고, 조조의 백만대군을 휘저으면서 ‘유선'을 구하고, 미부인을 구하고 했던 바로 그 일당백만의 전설을 만들어낸 그 장판에서 조운의 손에 쥐어진 것은 ’창‘이었다.
‘조자룡 헌창 쓰듯 하다’
라는 바로 그 말의 어원 또한 장판에서 전설을 만들어낸 ‘창부림’에서 나온 것이다. 괜시리 조자룡이 쓰는 무기가 창은 아닌 셈이다. 그럼 장판에서 얻었다는 전설의 ‘청홍검’은 안 썼다는 건가? 그 무기는 언제 썼지? 궁금하지.
손상향과 유비가 정략결혼을 했다가 훗날 손상향이 동오로 돌아갈 때 ‘유선’을 데리고 돌아가려고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은 알 것이다. 이때 손상향에게서 ‘유선’을 되찾은 이가 조운인데 이때 쓴 무기가 ‘청홍검’이다. 하지만 그게 다다. 청홍검이 정녕 천하무쌍의 검이라면 잘 쓰였겠다만 - 설명하기에는 무쇠 자르기를 무 자르듯이 한다는데 - 그런 검을 조조가 ‘하후은’에게 주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돼지목에 진주목걸이 수준이잖은가. 조조가 그런 맞지않는 매치를 할 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청홍검은 주인다운 주인 조운에게 돌아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가치를 펼치지 못한 것을 보았을때 청홍검은 그렇게 좋은 무기는 아니었던 것은 아니었지 않을까.
Written by 나그네
# by | 2006/10/22 17:45 | ◈삼국지관련논제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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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이 삼국지 6때까지였나..
청홍검은 무력 +9의 초레어 간지 아이템이었죠(...)
대인전에 사용할 무기로서보다는 주로 장식을 위한 용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조가 그걸 직접 들고 다니자니 무겁고
하후씨 가문은 친인척 뻘이니 보검 들고 도망치지도 않을테고
하후은은 하후연, 하후돈 같은 최전선의 맹장도 아니니
청홍검 들고 조조 따라 다니는 '딸랑이' 역할하기에 하후은이 딱 맞지 않았나 합니다.
딴 얘기지만.....
이순신 장군의 대도(태도?) 역시 크기가 워낙 커서 실전용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더군요.
말위에서 칼은 좀..ㅎㅎ
유비가 쌍검을 쓰기는 햇습니다만 그것도 그리 좋았다고 생각 하지는 않고요
딴설입니다만 이순신장군의 큰칼은 전 실전용이었으리라 생각 합니다.
실전용이 아닌걸 그리 크게 무겁게 만들어 다녔을지..^^
또 무력만 받혀 준다면 또 그 큰걸 휘두른다면.. 아마 무시무시 햇을겁니다.
쿠쿠쿠~^^
장정일 삼국지에서도 중간에 서로 다르게 표기되는 부분이 있을 정도입니다.
조자룡이 장판에서 싸울때 수많은 대군이 다구리깔때 자기가 쓰던 창이 못쓰게 되는 바람에 적병의 창을 빼앗아 싸웠다는 것에 유래를 둔 것으로 아는데요,
그때 창이라는게 다른 무기랑 달라서 좀 망가지기가 쉬운 무기였나봅니다.수 많은 적을 상대하다보니 창이 자꾸 무뎌지고,부러지고 하던 통에 그럴때마다 적병의 창을 빼앗아서 싸웠다(조자룡한테 적병의 창을 뺐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봅니다)고 하네요.한마디로 "아끼지 않고 쓰다"라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