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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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유비를 두번이나 피한 이유는...




 

유비가 원소와 조조의 관도전을 피해서 형주의 유표에게로 피난왔을 때 대부분의 ‘관료’를 꿈꾸는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유비는 조조와 원소, 여포와의 관계를 통해서 이미 ‘덕군, ’인군‘의 이미지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더군다나 난민 4천여명을 이끌고 서주의 도겸에게 간 것만으로도 난세의 민중들은 유비에 대한 막연한 ’구세주‘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그러한 인물이 형주의 유표에게로 왔으니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유표의 채씨일가는 유비의 그러한 ‘중원의 이미지’를 알고 있었기에 괜시리 형주에 오래 두었다가는 ‘황실일족’이라는 것만으로 그를 함께 하기에 도리어 유표의 지위가 약화될 수 있기에 유비제거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물론 유표의 형주에서의 파워에 대한 불안이라기 보다는 채씨 일가의 형주내에서의 막강한 권력 파워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 때문이 더 큰 이유가 되겠지만 말이다.


형주에서 당대의 석학으로 불리우던 방덕공이 붙인 애칭 ‘와룡’으로 더욱 유명한 제갈량이라고 유비의 형주 입성을 왜 몰랐겠는가. 더군다나 ‘관중과 악의’를 꿈꾸던 야심만만 젊은이 제갈량이 유비라는 ‘당대의 군웅’의 등장을 마냥 바라만 보고 있었으리라는 것은 솔직히 말도 되지 않는다. 제갈량이 누구인가? 제갈현의 사망으로 아무런 인맥도 없이 홀로 동떨어진 형주에서 ‘백그라운드’에 대한 열망으로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방덕공의 집 앞에서 3-4일동안 눈 맞아가며 청원하여 제자가 되었으며, 당대의 석학으로 이름높은 방산민, 사마휘로부터 배움을 터득했으며, 유표와의 인맥을 위하여 재주는 있지만 박색인 ‘황월영’과 결혼가지 한 야심만만 젊은이가 아닌가 말이다.


제갈량이 바라 본 조조라는 녀석은 서주에서의 그 대형참살로 ‘인간말종’에 지나지 않은 녀석이니 그가 모실 인물로서는 탈락이다. 오나라에서 3대째 그 굳건하게 인지도를 착실히 쌓아가는 손권은 이미 그 형 ‘제갈근’이 임관해 있으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마의 형제처럼 모두 조조에게 출사한 것처럼 함께 임관할 수도 있으니 숙부 제갈현의 말마따나 ‘난세에 같은 군주에 형제가 출사할 경우 그 세력이 멸당하면 후세를 이을 수가 없다’라는 걱정도 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럼 일차적으로 조조와 손권은 군주로서 제외대상이다. 그렇다면 이차는 형주에 같이 몸담고 있는 유표다. 하지만 제갈량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백그라운드’로 유표세력을 등에 지는 것은 이용했지만 유표에게 임관하는 것은 거절한다. 단순한 ‘음풍농월’하는 문인관료인 유표에게 천하통일을 향한 야망이 있으리라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표가 죽고 유종이 후사를 잇자 유비에게 단호하게 ‘형주를 가지라’고 권한 것 아니겠는가. 형주의 잇점은 충분한데 유표는 그 잇점을 제대로 살릴 인물도 아니거니와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에 부족한 인물이다.


그렇다 누가 있을까? 관도전으로 조조와 맞붙고 있는 원소가 있지만 이미 세력의 반이 꺾여서 하북으로 물러간 마당에 원소에게 희망이 있을 리가 없다. 설령 박빙의 승부를 낸다 할지라도 곽가, 순욱, 정욱등이 조조에게 말한 ‘원소는 조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라는 판단을 제갈량이 하지 못했을리는 없다. 저 멀리 보아서 후한의 반란 수괴 마등은 그저 촌뜨기로서 나대기만 할뿐 실력은 없다. 또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익주의 유장을 바라보아도 그저 익주에 안주하기만 바랄뿐 야심은 없는 소심한 군주일 따름이다.


제갈량이 제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굴려보아도 ‘군주’로 삼을 인물은 없다. 난세에 이름을 날리고픈데 자신의 능력을 힘껏 써줄 재능있는 군주가 없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유비’라는 거렁뱅이가 원소의 손아귀를 벗어나 유표에게로 왔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유비라... 제갈량의 귀에 ‘유비’라는 인물은 대책없이 허황된 꿈만 꾸는 몽상가에 불과했다. 중산정왕의 후예라는 것만으로 ‘후한복고’라는 터무니없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관우와 장비라는 걸출한 인물을 거느린채 난민을 이끌고 다니며 머무는 곳마다 폐허를 만드는 공포의 메뚜기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이는 순전히 ‘야심만만’ 제갈량이 가지는 생각일 뿐이었지, 수경선생 사마휘나 방덕공 등은 유비의 인물을 미리 알아보고는 서서라는 준재를 유비에게 임관을 시키는 등 유비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무던한 애를 쓴다. 제갈량이라고 사마휘가 언질을 주지 않았을까마는 제갈량은 유비의 그러한 ‘허무맹랑한 몽상가적 기질’이 싫었을 것이다. 본래가 이치에 합당하고, 사리를 분별하고, 계획 타당성을 따지는 ‘이과계열’ 제갈량과 허물어져가는 꿈을 좇으며 믿는 것이라고는 ‘중산정왕의 후예’라는 간판 하나이며, 무너지고 패하고 도망쳐도 ‘후한복고’를 위해 일어나고 일어나는 몽상가적 ‘문과계열’ 유비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무계획적 유비는 계획적 제갈량이 맞을 수 있지만 계획적 제갈량이 무계획적 유비랑 맞을 리가 없는 셈이다.


더군다나 서서마저도 어머니를 위해서 조조에게로 임관하러 가면서 제갈량을 또다시 추거하니 제갈량으로서는 그네들의 방문이 달갑지 않음은 불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제갈량은 본디가 융중에 거하면서 ‘공부’밖에 모르는 서생이다. 그런 서생이 왠 ‘여행’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친구들도 왔다가 헛걸음하고, 심지어는 장인어른 ‘황승언’마저도 헛걸음을 한다. 그럼, 제갈량은 제멋대로 와리가리 하는 ‘방랑객’이란 말인가. 그것은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난세에 ‘융중’을 벗어난 적 없는 제갈량이 떠나봤자 어디로 떠난단 말인가. 그리고, 마누라 황월영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솔직히 유비가 제대로 제갈량을 찾고자 했다면 여행을 떠났다 하더라도 어차피 갈곳이라고는 형주, 융중 근방일 것은 뻔한 노릇인데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찾고자만 하면 찾을 수 있는데 유비는 일부러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제갈량도 유비를 일부로 피했다만 유비도 제갈량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유비는 그러한 자신의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그런 생고생 노가다를 제갈량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제갈량은 유비에게 임관당하지 않으려고 피하고 도망다닌 것이다.


그러데 왜 세 번째에는 잡혔을까? 공부만 하는 서생 제갈량이 ‘운동’을 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의 말년을 보자면 페병을 앓은 것으로 보아 본디가 심약한 체질임을 알수 있다. 유비가 언제 오나 신경쓰고 그리고 따로이 공부하고 정세파악하고 하다보면 제갈량은 쉽게 피로할 수 밖에 없고, 더군다나 2번째 찾아왔을때에는 겨울이었다. 겨울 그 혹한의 추위에 몸을 숨기기 위해 다른 외지로 여행을 갔다 오려니 가뜩이나 심약한 체질에 피로가 누적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제갈량은 유비가 세 번째 찾아간 날 ‘잠’을 우연히 잔 것이 아니라, 그 피로를 풀기 위해 늘 낮잠을 자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제갈량이 육체적으로 심약한 사내였음은 그가 ‘사륜거’를 타고 다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전장에서 곽가, 사마의, 가후, 정욱, 순욱, 순유, 주유, 노숙 등을 보자. 그네들은 말을 타고 다니며 전장에서 사태를 관망하면서 변화에 즉각 대응하면서 바로바로 전황을 타개할 계책을 마련해낸다. 하지만 제갈량은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간 적이 없다. 박망에서도 그는 ‘성’안을 지키면서 밖으로 나아가 전장을 살펴보지 않았다. 혹여 제갈량이 전장을 나간다하더라도 그는 ‘사륜거’를 타고 다녔지 말을 타면서 역동적으로 전장을 타개하지는 않았다. 이는 전적으로 그의 심약한 체력부족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체력부족이든 계획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제갈량은 유비의 세 번의 방문을 통하여 유비에게 임관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제갈량은 ‘관중과 악의’를 꿈꿨을지언정 모실만한 주군이 없던 그 상황에서 허무주의적으로 유비를 택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천하통일의 자질을 지닌 주군이 아님을 알고서도 말이다.

 

Written by 나그네

by 나그네 | 2006/10/01 15:59 | ◈삼국지관련논제 | 트랙백(2)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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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혜민아빠]책과 사진 .. at 2006/10/02 15:52

제목 : 제갈량이 유비를 두번이나 피한 이유...
형주에서 당대의 석학으로 불리우던 방덕공이 붙인 애칭 ‘와룡’으로 더욱 유명한 제갈량이라고 유비의 형주 입성을 왜 몰랐겠는가. 더군다나 ‘관중과 악의’를 꿈꾸던 야심만만 젊은이 ......more

Tracked from 오선지위의 딱정벌레 at 2006/11/12 23:34

제목 : 제갈공명에 대한 의문점...
갑자기 "삼국지의 지혜"라는 범우사 문고판을 보다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서 ... 오늘의 의문.27세의 천연 제갈공명은 자기를 3번이나 찾아온 유비에게 "천하삼분의 계"를 설명하였을까? 공명은 유비가 천하의 주인이 아닌 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유비를 따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의 의문점이다."천하삼분의 계"는 공명의 생각이 아니라 수년 전 이미 손권의 책사 "노숙"에 의해서 제시 된 계책이었다. 물론 "조조", "손권" 그리고 나머지 ......more

Commented by 컬러링 at 2006/10/02 10:23
제갈량이 어쩔수 없이 유비 에게 갔다라...
나그네님의 글을 읽고 나니 그럴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그만한 인재가 무슨 필연적인 기연에 의한것도 아니고 당시 미약했던 유비의 밑으로 들어 간건
이상하게 생각을 않할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잘된것이겟지요
조조같이 고집도 있고 카리스마적인 사람에게 들어 갔다면 아마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펼치기도 힘들었을테고
그 밑의 쟁쟁한 책사들의 텃세도..ㅎㅎ
제갈량의 뜻이라면 잘 따라와 주었던 유비가 제일 잘맞는 군주임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갈량의 체력적 부실함은 아마도 그 성격과 연관이 깊지 않나 싶습니다.
제갈량은 수시로 그 히스테릭컬 함을 보여 줍니다. 완벽주의자의 성향도 보여주고
자신이 스트레스를 만들어서 떠안는 스타일이랄까요?
그런 성격이 자신을 약한 몸을 더 힘들게 한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Commented by zelon at 2006/10/02 10:49
재미있는 해석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싱클레어 at 2006/10/02 11:14
ㄲㄲㄲ하여튼 이야기 부풀리는데는 달인. 근데 그것도 이제 질리기 시작하네요. 다른데서 이미 본 해석이라 새롭지 않은...삼갤이 엄청난 라이벌인거다
Commented by estdragon at 2006/10/02 11:25
박종화씨의 글을 얼마전에 다시 읽었는데 나그네님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싫지만 어쩔수 없는 선택이 아니였을까 라는 ... 알고보니 체력부족이였군요 -_-;;;
Commented by 如水 at 2006/10/02 13:25
유비의 삼고초려는 역사상으로 실제하지 않았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삼고초려는 나관중이 촉 중심으로 진행되는 삼국지에서 제갈량이라는 인물의 존재감을 확실한 부각시키고
극적인 진행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것이지용.

심하게는 제갈량의 존재까지도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당.
재밌는 해석 잘 보았습니다
Commented by 골룸 at 2006/10/02 15:19
잘 읽었습니다. 저로선 내심 감격하며 그 대목을 읽었는데 또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Commented by 혜민아빠 at 2006/10/02 15:34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어 봐도 제갈량이 선택은 유비쪽으로 국한 되었다고 넌지시 이야기 합니다.
손권이나 조조에게는 기존에 많은 모사들이 있기 때문에 갈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갈 사람은 유비인데 그냥 가기에는 뭐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 되기 위해서 또한 기존 관우와 장비라는 세력을 그냥 무시하고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Commented by 三天포 at 2006/10/02 17:30
어쩔수 없이 잡혀갔단 얘기로군요

즐겁게 잘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아룬드냐안 at 2006/10/02 23:23
재미있는 해석이군요.. 삼국지가 저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나그네 at 2006/10/04 19:46
컬러링 > 제갈량의 완벽주의적인 성향도 한 몫을 하지요.

제론 > 감사합니다.

싱클레어 > 삼갤은 뭐죠? 흠... 어디길래 라이벌이지....

에스트드래곤 > .... 삼국지의 바이블 박종화 선생님이신데요... 저라고 쿨럭~~

여수 > 제갈량의 존재까지 부정이라... 허허~~ 사서를 부정하는군요.

골룸 > 네.. 새로운 생각, 다양한 사고의 스펙트럼이 필요합니다.

혜민아빠 > 역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런면에서 제갈량은 '얍삽이'... 하하~~

삼천포 > 드러내놓고 잡혀가느냐, 드러내지 않고 들어가느냐.. 뭐 그런 차이겠지요.

아룬드나인 > 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몽양 at 2006/10/06 09:51
뭐랄까 이건 해석이 아니라 정사와 연의에서 입맛에 맞는것만 골라 쓴 짜맞추기같달까요. 곳곳에 추측만으로 판단한 기색이 역력하네요..혼자만의 상상으로라면 즐거울수 있겠지만 어디가서 의견이라고 내놓을법한 물건은 아니군요..몽상가적 문과계열이라는 문구에선 이과였던 제 얼굴이 다 뜨거워집니다..-_-;; 법학과 상경이 몽상일리는 없으며 문학은 몽상을 가장한 현실이야기지요. 이쪽 애들이 드러내놓고 문과는 허황됐네 비현실적이네하며 우월감을 느끼기에 말입니다..자기들이 이해를 못하는건데..제갈량이 이과체질이라 계획적인게 아니라 제갈량 자체가 계획적인 인간이겠죠..왜 문이과가 나왔는지 사실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나그네 at 2006/10/09 21:15
몽양 > 문이과의 예는 몽양님의 말씀을 들으니 예를 잘 못 들었군요.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네요. 흠, 이 글은 추측 맞는데요. 하하~ 왜 그리 흥분을....
Commented by 구름 at 2007/02/08 15:57
이과 문과에 발끈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부질없는건데......
Commented by lysander at 2007/03/11 18:55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겠나 싶은 생각을 하는 건 저뿐일까 싶습니다만...

당시는 이미 조조가 물품구현령을 통해서 쓸만한 인재란 인재는 싹 다 긁어간 상태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따라서 조조 밑으로 출사하게 될 경우, 조조라는 주군이 맘에 들고 안들고를 떠나서 상당히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 밖에 없다는건 자명한 사실이지요.

동오 역시도 생각을 해 볼 난제인게, 우선 동오엔 치명적인 결점이 있는 바, 이곳은 중앙 집권적인 정치체제를 보이는 곳이 아닙니다. 지방 토호세력이 상당히 강력하고, 이들을 후려잡으려다가 손책이 오히려 칼침을 맞은 곳이기도 하니까요. 거기에다가, 정치수도는 건업인데 반해, 곡창지대는 여강쯤이라, 군대를 늘 양분해서 배치해야 하는, 그런 만큼 꾸려가기 힘든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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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비를 집었냐 -_-? 라고 하신다면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군요 oTL
Commented by 방문객 at 2008/12/02 01:14

사실 일부에선 유비의 삼고초려설 자체를 회의적으로 봅니다. 심지어 <위략>에서는 엉뚱하게도 제갈량이 유비를 먼저 찾아갔다고 서술하고 있죠.

진위 여부야 둘째치고, 적어도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제갈량에게도 나름 꿈이 있었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제갈량도 형주에서 나름 인맥 형성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고 그 성과도 상당했다는 거죠.

자세히 보면 형주 주요 호족들이나 학자들. 심지어 유표, 채모 일가와 제갈량이 직간접적인 인맥이나 학연으로 연결되어 있더군요.

만약 <연의>에서의 말처럼 세상사에 혐오를 느껴 융중에 그냥저냥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무엇보다도 연좌라는 개념이 있던 그 시대에서는...

저 또한 제갈량이 유비를 선택한 것은 다소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조조의 경우 이미 순욱, 곽가, 정욱 등의 참모가 포진한 상태였고... 실제로 위나라로 간 최주평, 서서의 직위가 제법 낮자 그정도 되는 인재들이 왜 그런 대접을 받느냐며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 기록이 삼고초려설을 부정하는 <위략>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위나라가 자신들을 자랑하기 위해 이런 기록을 조작 혹은 과장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지만... 요는 경쟁률이 엄청 빡빡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조조가 '형주를 얻은 것보다 괴량을 얻은 것이 기쁘다'고 말한 괴량도 유종이 항복한 이후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손권은 형 제갈근이 있는데다 호족들의 입김이 쎄 형주의 귀족(호족은 아니고..) 제갈량이 뜻을 펼치기엔 제약이 많죠. 뭐, 호족 세력의 견제를 원하는 손권의 입장에 따라 역발상적으로 중용될 가능성도 있지만... 숙부 제갈현의 말마따라 정말 큰 일이 벌어질 경우 그대로 가문 절멸 크리(..) 유표나 유장, 원소 등은 논외로 치고.

그렇다면 남은건 유비 정도... 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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