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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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 권43 촉서 13 - 왕평전

엔하위키의 나그네 글중에서

일례로 왕평이 글을 못읽었기 떄문에 부하가 불러주는걸 다 외웠다는걸 말이 안된다고 부정했으며(정사에 나온 얘기인데),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그리고 필자는 왕평전에서[어떤 책에서는 왕평이 책을 부하로하여금 읽게 하여 그 내용을 외워버렸다고도 하는데 그런 능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 자신이 책을 보는게 낫지 않겠는가. ]라고 말을 했다. 엔하위키를 작성한 이는 '정사의 이야기'라고 단언하고 있다. 난 정사에서 본적이 없는데. 그럼 정사를 살펴보자.

王平,字子均,巴西宕渠(故城在今四川省渠縣東北)人。本來寄養在外婆家,姓何,後來恢複本姓王。曾隨同杜濩、樸胡到洛陽,做校尉的官,跟從曹操征漢中,因而投降先主,任職牙門將、裨將軍。(後主)建興六年(公元228年),隸屬參軍馬謖爲先鋒。馬謖舍棄臨河駐紮的軍事常規而領隊上山,舉動措施煩擾不堪,王平接二連三規諫他,馬謖卻不聽,結果在街亭打了個大敗仗。馬謖的部隊全數零落解散了,只有王平率領的一千人,擂響戰鼓穩住陣勢,魏將張郃懷疑他設有伏兵,不敢進逼。於是王平慢慢收編各營殘餘的散兵,率領將士安全退回。丞相諸葛亮誅殺了馬謖和將軍張休、李盛,免了將軍黃襲的兵權之後,王平特別受到推崇和重用,加官爲參軍,統領五部兵,又兼當營屯的事,進位討寇將軍,封爲亭侯。(建興)九年,諸葛亮圍祁山,王平單獨負責南面的包圍網。魏大將軍司馬宣王(懿)攻諸葛亮,張郃攻王平,王平堅守不動,張郃怎樣也攻不下。十二年,諸葛亮在武功死了,大軍退回,魏延乘機作亂,和政府軍才一接戰就潰敗滅亡,這都是王平的功勞。他升任後典軍、安漢將軍。副車騎將軍吳壹駐守漢中,王平又兼領漢中太守。十五年,進封安漢侯,代替吳壹督領漢中。(後主)延熙元年(公元238年),大將軍蔣琬駐守沔陽,王平改任前護軍,署理蔣琬大將軍府中事務。六年,蔣琬回師在涪駐防,任命王平爲前監軍,鎮北大將軍,統理漢中。

七年春,魏大將軍曹爽率領步兵騎兵共十餘萬向漢川進發,先頭部隊已經到了駱穀。當時漢中守兵才不到三萬人,敵眾我寡,所有將領都大驚失色。有人提議:“現在我們的兵力不足夠抵擋敵人,只好順其自然,我們只須固守漢、樂兩城保全實力,賊人來了就讓他深入,以空間換取時間,這麼來回一拖拉,涪地的援軍就有足夠的時間趕來救關城了。”王平說:“這話不對,漢中和涪距離幾乎一千裏,怎會那麼快趕得來。賊兵假如得到了關城,那就後患無窮了。爲今之計應該先派劉護軍(敏),杜參軍(祺)占住興勢,我跟在後面支援;如果賊人分兵向黃金穀進攻,我就率領一千人居高臨下打他,這麼來回一拖拉,涪地的援軍就快到了,只有這樣才是上策。”在許多將領之中,只有護軍劉敏的想法和王平相同,於是馬上付諸實行。從涪來的各路援軍,和大將軍費禕從成都來的援軍相繼到了。魏軍看情形不對就退了回去,剛好應驗了王平原先的策略。在那段日子裏,鄧芝在東,馬忠在南,王平在國境北面,都同樣出名,同樣有建樹。


王平自小從軍,在軍隊裏長大,不懂得寫字,他認得的字不超過十個,但他靠口述請人代寫的信,都很有意思條理。他叫人讀《史記》、《漢書》的本紀、列傳,聽著這些,就完全能夠懂得裏面的重要意義,評論分析的時候也往往不會和原來的主旨沖突。他又遵行法度,說話不隨便開玩笑,從早到晚,正正經經的坐著到太陽下山,絲毫沒有軍人乖戾的作風。可是他個性褊狹,好侵陵人而又多疑,被人看不起,這些是他的缺陷。他在(後主)延熙十一年(公元248年)去世,兒子王訓承繼他的爵位。


起初,與王平同郡的漢昌人句扶,忠勇寬厚,屢次建立戰功,功名爵位亞於王平,官做到左將軍,封宕渠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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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정사의 내용이다. 다 필요 없다. 무식한 부분만 발췌하면 된다. 언더라인으로 볼드체한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 외에는 살펴보면 알겠지만 무식한 부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王平自小從軍,왕평은 어려서부터 군을 좇아서

在軍隊裏長大,군대에서 성장하였다.

不懂得寫字,글자를 알지 못했다.

他認得的字不超過十個,그가 아는 글자는 10개를 초과하지 않는다.

但他靠口述請人代寫的信,그러나 그는 구술에 의지하여 다른 사람에게 대신 청하여 쓴 서신은

都很有意思條理。모두 아주 생각이 조리있다.

어디서 불러주면 모조리 다 외웠다는 말이 나오는가?

나한테 뭐라고 하기 전에 자신부터 똑바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삼국지 5적이라고 써 놓은 김원중 역 삼국지를 보고서 말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혹여라도 그 뒷문장이나 앞문장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데 앞뒤로 한문장씩 더 해석해보자.

[앞문장]
在那段日子裏,그 시기에 있어서

鄧芝在東,등지는 동쪽에 있고,

馬忠在南,마충은 남쪽에 있고,

王平在國境北面,왕평은 국경의 북쪽에 있는데

都同樣出名,모두 서로 함께 이름을 내고

同樣有建樹。서로 함께 공훈을 세웠다.

[뒷문장]
他叫人讀《史記》、《漢書》的本紀、列傳,聽著這些,
그는 사람을 불러 사기, 한서의 본기, 열전을 읽게하여 듣고 그것을 드러내는데

就完全能夠懂得裏面的重要意義,곧 이면의 중요한 뜻을 완전히 알 수 있었고

評論分析的時候也往往不會和原來的主旨沖突。평론하고 분석할때도 역시 자주 원래의 주지에 충돌하지 않았다.

어느 부분에서도 남이 말하면 듣고 모두 다 외웠다라는 글은 나오지 않는다.

해석하지 않은 앞 부분 전체는 왕평이 촉에서 전쟁에 참여해서의 이야기들이고

해석하지 않은 뒷 부분은 무식과는 상관없는 개인사와 후사, 관직의 이야기들 뿐이다.

만약 내 해석이 틀린 곳이 있으면 지적해주기 바란다.

by 나그네 | 2009/11/21 00:04 | ◈삼국지관련논제 | 트랙백 | 덧글(3)

나그네 - 아직 안 죽었네.

오늘 댓글에 '희한한 글'과 '링크'가 걸려있어서 이게 뭔가 하고 들어갔다가 대폭했다. ㅋㅋㅋ.

아직도 나그네 안 죽었다는 것인가. 안티는 근 3-4년 전에 멸망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잔존하다니.

그저 감사할뿐. 아직도 알아주고 누군지 알아준다는데 아직 안 죽었다는 것인가. ㅋㅋㅋ

http://puzzlet.org/archive/angelhalo/view/%EB%82%98%EA%B7%B8%EB%84%A4 <- 링크

2. 블로거. 직업은 괜찮은 대형식당의 관리직 정도 된다는듯. 삼국지 관련 포스팅으로 유명해 삼국지 쾌도난담이라는 책을 썼다. 뭔가 말도 장황하고 대체적으로 촉까 기질에다가 조조빠 기질이 있다. 유비에 대한 평은 비판을 넘어서 매도하는 수준이다.
솔까말 글은 그다지 못쓴다. 너무 돌려 말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고나 할까. 이에 반발한 디씨인사이드 삼국지 갤러리의 유저들이 마구 나그네를 까대자 친히 와서 자기가 최훈삼국전투기를 쓰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이상한 일기 비슷한 글을 써대며 자신의 권위를 은근히 자랑했다. (약간 윤서인 비슷한 기질이 있다.)그리고 삼갤 유저들은 이 비문섞인 글을 보며 무슨 말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이 사람의 큰 문제는 정사 삼국지삼국지연의를 마음대로 섞어서 낚시질을 한다는것,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기록만 믿는다는 것. 가끔 정사에서도 연의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기 머리 속의 소설을 써대기도 한다.
일례로 왕평이 글을 못읽었기 떄문에 부하가 불러주는걸 다 외웠다는걸 말이 안된다고 부정했으며(정사에 나온 얘기인데), 그러면서 정사와 연의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가져와 사용한다.(가끔식 정사, 연의 어디에도 없는 내용을 지어내기도 한다.)
거기다가 연의 위주의 전쟁 위주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사무직, 책상물림은 인재가 아니다"라는 헛소리를 했다. 난세에도 내정은 필요하고, 전쟁을 하려면 물자 관리가 필요하다. 완전히 연의에서처럼 쌈박질 하는것만이 전쟁의 전부인줄 아는 모습이다.
일부 삼국지 팬층에선 김운회, 이문열, 신동준, 김원중과 함께 5대역적 취급한다(...)
하도 사람을 낚아대서 별명이 낚은애
최근 사학과 들어가더니 글에 한자만 빡빡 넣어서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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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내 글의 '한자' 못 읽는 수준이면 '중국사'집어 쳐야 할 일이다.

중국 역사 관심 가지는 애들에게 어려운 한자 그닥 없거든.

한문도 못 읽으면서 '정사 삼국지 '읽는다고 깝치지나 말고.

김운회, 이문열, 신동준, 김원중과 함께 5대 역적이라... 이거 감사한대. 김운회 이문열은 나도 즐이지만

신동준, 김원중과 엮인다면 나로서는 손해볼 게 없는 셈. 더구나 밀리언 셀러 작가 이문열과 함께 묶여도 뭐...

하여튼 뭐 난 감사하게도 굳이 저렇게까지 기록까지 해서 줄 정도라면 열렬한 안티가 아닌가.

내 존재감이 아직도 있다는 것인가. 그게 신기할 따름이네.




by 나그네 | 2009/11/19 21:44 | ◈일상에서의생각 | 트랙백 | 덧글(4)

홍석천 '논개정신' 논란?

화요일 강심장 홍석천 논개정신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나도 강심장을 봤다. 강심장이 화요일날 하니까 수요일날 발표할 강독은 강심장 끝나고 나서 날밤 새며 마무리 하는 우를 범했지만...

그런데 그 다음날 '2002 한국 축구선수의 능력을 편훼한 것이다'라느니 '다음날 축구 경기가 있는 이에게 술을 마시게 한 것이 자랑이냐?'라느니 '상대국 축구협회나 FIFA에서 문제를 삼을 수 있다' 라는 등의 말을 하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 이게 뭔 말이야?

홍석천이가 그네들을 '강제로 잡아다가 붙잡아서 감금해서 술을 먹인것이냐?' 이렇다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아니잖아. 이미 다음날 경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러 온 것이고 여기에 홍석천이 가세해서 술을 함께 마시고 홍석천이 자비로 호텔방을 잡아서 술을 더 마시게 한 것이다.

축구 선수들이 애들이냐, 홍석천이 '어깨들' 동원해서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한 것이 아니잖아.

이게 왜 뭐가 문제란 거야.

어처구니가 없다. 무슨 포르투갈 축구 선수들이 스스로 관리를 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왜 홍석천을 가지고 야단이란 거야.

예전에 농구국가대표팀이 국제 경기를 하는데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 다음날 경기를 망친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신력이 썩었다'라면서 질타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 농구선수들과 술을 마신 이가 그 나라의 유명한 연예인으로서 술을 사주고 접대를 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그 연예인이 그네들 방송에서 그런 적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 연예인에게 뭐라고 할 수 있나? 뭘 뭐라고 할 수 있어.

왜 성인이야? 스스로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나이들이다. 무슨 중고딩도 아니고.

'감금'이라면 문제가 된다만 그것도 아니고 나참 어이가 없다.



Written by 나그네

by 나그네 | 2009/11/05 12:41 | ◈일상에서의생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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