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매 시대의 왕 - 仁祖

수목극의 강자 '일지매'가 이제 그 막을 오늘로써 내렸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왜 인조시대를 배경으로 했는가'에 대한 생각이랄까. 우리에게 인조는 어떤 임금인가? 역사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폭군 광해군'의 폭정에 견디지 못하여 신하들이 일어서서 광해군을 몰아내고 세운 왕이 '인조' 다. 하지만 - 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 신하들은 인조를 겁박하여 쓰러지는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라고 강요하며 기세등등한 청에 대해서 반항하라 이르러 이에 '유약한' 인조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청이 쳐들어와서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절을 하면서 신하가 된 '삼전도의 치욕'도 있다.

 

이렇게 보면 참 '암울한 임금'이요 '불쌍한 임금'이다. 그래서 '인조'라는 휘호를 준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 사서를 하나하나 뒤져가보면서 '인조'라는 인물을 하나하나 알아가보자. 과연 그는 어떤 임금이었을까?

 

인조는 1623년에 인조반정을 통해서 왕에 즉위한다. 그러므로써 조선에는 두번의 '반정'이 있게 된다. 첫째가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오른 '중종반정'이 있고, 이번에 말한 '인조반정이다. 그런데, 이 두개의 '반정'은 성격이 완전 틀리다.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최강의 왕권을 휘둘렀던 연산군이 그 왕권을 잘못다루어 폭정으로 변질되어 이를 견디다 못하여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키고는 '중종'을 즉위시킨 것이다. 즉, '중종'은 전혀 스스로 왕이 될 줄 모르고 있었으며, 반정공신이 집으로 모시러 올때까지 벌벌떨고 있던 임금이다. '중종'은 전혀 반정에 간여한 바가 없다.

 

그러나, 인조는 다르다. 우선 인조는 자신의 아우가 광해군에게 죽은 것에 대한 분노가 있고, 이와 더불어서 광해군에 의해 그 기득권을 빼앗긴 서인세력이 작당하여 일으킨 전형적인 '인조'의 주동하에 일어난 '반정'인 셈이다. 성격 자체가 틀리다. 그러니 즉위해서도 왕권의 파워가 전혀 틀리다. '중종'은 신하들의 힘으로 즉위하여 '신하'의 힘이 막강하였다. 이에 중종이 그들의 힘을 견제키 위해 '사림'세력을 등용하게 된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인조는 스스로가 신하들과 작당하여 왕좌를 가진 인물이고, 따라서 그 주변은 반정공신인 서인세력으로 채워넣어 스스로 왕권을 강화했다. 인조는 '왕족일파'가 자신과 같이 자기에게 칼을 겨누고 왕좌를 겨누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 인물이다. 이렇게 성격이 틀린 인물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듬해 1624년에 인조반정에 큰 공을 세웠던 이괄이 1등 공신대우를 맏지 못하고 한성 부윤에 임명된다. 그런데 거기다가 관서지방으로 파견나가게 되는데 관서지방이 어디인가? 조선8도에서 가장 핍박받고 멸시당하는 지역이 관서지방이다. 그래서 관서지방에서 민란이 자주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홍경래, 이시애 등이 모두 관서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은 모두 그런 유래가 있는 것이다. 본래가 '반정부기질'이 강한 관서지방으로 불만투성이 이괄이 파견갔으니 그는 그네들과 규합하니 이것이 바로 '이괄의 난'이다.

 

이괄의 난으로 '인조'는 도성을 버리고 공주로 도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괄의 난은 임경업, 이원익에 의해서 진압되고 인조는 다시 도성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하여 대학자 기자헌 등 35인이 연루 의혹으로 인하여 죽임을 맞는다.

 

1626년에 인조는 느닷없이 '남한산성'을 개축한다. 물론 남한산성 개축은 임진왜란 이후 유성룡에 의해서 실시되기는 했지만 다시금 인조때 개축을 하고, 남한산성에 수어청을 설치하고는 실질적으로 군사훈련까지 시행한다. 왜 느닷없이 이 시점에서 이 짓을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앞 날에 대한 걱정 혹은 명분으로 시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 1627년에 후금이 쳐들어오고 이를 버텨내지 못하고 인조는 강화도로 도주한다. 그리고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형제의 맹'을 맺고 후금은 돌아간다. 그리고 이때부터 꾸준하게 반란이 일어나는데 후금이 돌아가고 나서 이인거가 반란을 일으켰고, 그 다음해인 1628년에 유효립이 반란을 일으켰다. 1629년에는 양경홍이 역모를 꾀했다.

 

국내적으로 이러한 난리통이 일어나는 와중에 1630년 명의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의주를 노략질하는 짓이 발생한다. 이에 인조는 이상한 영을 내리는데 그것이 척화의 명으로 후금과 단교하고 명과의 사대를 존숭하자는 것이다. 하여튼 이런 이상한 짓을 하니 후금이 가만있을리가 없다. 1636년에 청이 1627년의 '강화조약'을 조선이 어겼다고 쳐들어오니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망가지만 청군의 막강한 공세를 이겨내지 못해 이듬해 1637년 강화도가 함락되자 버틸 힘을 이겨내지 못한 인조는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고, 이때 소현세자가 청으로 붙들려 끌려간다.

 

소현세자와 이완, 임경업은 청으로 가서 청의 명으로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전쟁을 하지만 임경업은 병자호란의 치욕등에 대한 청의 복수로 인하여 명나라 군과 합세하기도 하고 청을 공격하기도 하는 등의 행동으로 청의 눈 밖에 난다.

 

그러다가 1645년 1월에 소현세자가 청에서 조선으로 돌아왔는데 3월에 느닷없이 병으로 죽고만다. 과로와 피로라고 하는데 청나라에서의 혹독한 9년의 세월도 견뎌내고 거기서 각 전쟁을 치른 소현세자가 돌아온지 2개월만에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많다. 그리고 5월에 봉림대군이 청에서 돌아오고 인조는 봉림대군을 6월에 세자로 세우고, 소현세자의 빈을 죽인다. 세자가 된 봉림대군이 이완과 '북벌'을 꾀했던 임금 '효종'이다.

 

그 다음해인 1646년에 인조는 청에 요청하여 임경업을 조선으로 돌려달라 하는데 이는 국내에서 일어난 좌의정 심기원의 반역사건에 임경업이 연루되었다는 죄목때문이다. 조선으로 돌아온 임경업은 그렇게 처형되었다. 청나라에 근 10여년을 있으면서 명나라에 붙었다 청나라에 붙었다하면서 조선을 위해 싸운 이가 어떻게 조선의 반란사건에 연루되었는지 의심만 갈 뿐이다.

 

하여튼 이러한 의심많은 임금 인조는 소현세자가 죽은 것에도 걱정이 안 놓였는지 1647년에 소현세자의 세 아들을 제주도로 유배보낸다. 그리고 인조 자신은 1649년에 그 파란많은 생애를 마감한다.

 

24년의 재위기간 중에 거의 매년 '반란','역모'가 끊이지 않았고 '호란'을 두번이나 겪은 임금. 국제정세에 어둡고 자신의 왕권만을 위하여 끊임없이 신하들을 의심하고 옥죄이고 자식까지 '의심스러운 죽음'에 이르게한 임금이다. 필자가 보기에 조선은 두명의 '임금답지 않은 임금'을 모셨다. 하나는 '선조'이고 또 하나는 '인조'라고 할 수 있다.

 

 

Written by 나그네

by 나그네 | 2008/07/24 23:25 | ◈일상에서의생각 | 트랙백 | 덧글(3)

대한민국 역사,시간,1973-2007

1973년 - 태어났을 당시를 기억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1978년 - 오로지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마징가Z와 그레이트마징가다. 5살의 나이에 이런게 기억나는게 어디야?

 

1979년 -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해. 하지만 그다지 큰 감흥은 없다. 대통령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감흥따위가 있을리가 없잖아. 그리고 미드라고 불리우는 작품들이 등장한 시기가 아니라 내 기억에 나는 미드들이 등장한다. 그 첫타자가 바로 야시시한 옷으로 남자 아이들의 혼줄을 놓던 '원더우먼'. 그런데 내용은 모르겠는걸.

 

1980년 - 역시 미드의 폭발을 일으킨 '두얼굴의 사나이', '600만불의 사나이'

 

1981년 - 전설의 만화 '은하철도 999'를 한 해이다. 거의 이 만화에 빠져서 살았다고 하면 될라나.

 

1982년 -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시작된 해이다.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OB 베어스'소년회원으로 가입을 했다. 그런데, 서울사람인 내가 왜 OB 베어스에 가입을 한거지? 아버지도 서울 사람인데 말이지. 역시, 술을 좋아해서 그런것일게다. 그리고 또다시 미드 붐이 일었다. 바로 '전격Z작전' 키트라고 외치면 나타나는 인공지능 자동차. 이 얼마나 멋진 자동차인가.

 

1983년 - 아웅산 사태가 발생했다. 이 소식을 뉴스로 듣고는 펑펑 울었다. '나라가 망한다'라고 하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전두환을 가장 싫어하는 내가 그가 죽었다고 펑펑 울다니 거 참 이런 아이러니가 있는가? 그리고, 또 하나의 전설의 만화와 미드가 등장한다. '우주소년 아톰','개구쟁이 스머프'그리고 '브이(V)'

 

1984년 - 82년 전격Z작전부터 시작된 미드붐은 줄줄이 이어진다. 에어울프의 바람은 '나와라 키트'에못지 않았다.

 

1985년 - 정말 대박인 해다. 미드로는 맥가이버가 바람을 몰았고, 만화로는 '컴퓨터 형사 가제트'가 장악했다. 얘네들을 모르고서 무슨 대화를 하겠는가.

 

1986년 - 아시아 게임인가 뭔가 때문에...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다는....

 

1987년 -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해 6.10항쟁이 일어나 노태우로 하여금 6.29선언을 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하게했는데, 어이없게도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 해다. 그리고, 듣기만 해도 가슴이 쿵쿵 뛰는 BGM을 가진 미드 '머나먼 정글'이 방영되었다.

 

1988년 - 서울 올림픽때문에 다른 사건의 기억은 그다지 가물거리네. 지강헌 사건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내 기억에는 없다.

 

1989년 - 뭐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동유럽의 김일성, 독재자라고 불린 차우셰스쿠가 민중봉기로 잡혀서는 총살형을 선택하자 무려 160발을 맞고 사망한 일이다.

 

1990년 - 역시 별 기억나는 것은 없는데 러시아의 '빅토르 초이'가 죽었다고 하여 이슈가 된 적이 있다.

 

1991년 - 걸프전이 새해를 맞이함과 동시에 발생하여 학교에서 아침마다 CNN을 본 기억이 난다. 전쟁의 생중계. 이건 쇼킹이자 방송의 변화였고 시대의 혁신이었다.

 

1992년 - 뭐 다른 게 필요있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우리나라 음악계를 아주 뒤흔들어 놓았다. 음악이 서태지 이전과 서태지 이후로 나뉘게 되는 계기의 경계를 만든 그룹. 서태지 이전에는 조용필 이전과 이후가 있을 따름이었다.

 

1993년 - 사건의 해다. 우암상가아파트 건물이 무너졌으며 부산구포 무궁화호 탈선사건이 일어났다. 잠잠하려는데 영화촬영하던 헬기가 추락하여 탤런트 변영훈이 죽었다. 그러다가 전남에서 아시아나 항공기가 추락하여 탑승자가 사망했다. 그렇게 한해가 지려는 무렵에 서해페리호가 침몰하면서 다사다난 한해가 저물었다.

 

1994년 - 내가 군대 가기 3개월 전에 김일성이 죽었다. 군대 가면 '군기 빡시게 굴린다'라고 하여 남북 전쟁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흘렀다. 군 입대하여 훈련소 시절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이게 뭐하는 짓임?

 

1995년 - 대구 가스폭발과 삼풍 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작년에 이어서 여전히 사건 사고로 분주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죽음이 기억에 남는 것은 '참 쉽죠'라면서 그림의 대중화를 위해서 분주히 노력하던 밥 로스가 죽었다. 그건 기억이 나네.

 

1996년 - '정의봉'으로, '김구 선생'을 죽인 '안두희'를 응징한 '박기서' 사건이 기억난다. 이때 '나라가 응징하지 않는 암살범을 개인이 응징하는 것'에 대한 난상토론이 벌어졌었다.

 

1997년 - IMF 말고 다른 기억 날리가 없다. 괌 대한항공 참사 정도.

 

1998년 - 별 사건 없음

 

1999년 - 서해교전이 최대 이슈였다. 우리나라가 분단 국임을 확인 시킨 해다.

 

2000년 - 말 많고 탈 많은 사건인데 그래도 자랑은 자랑이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 물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때문이기도 하지.

 

2001년 -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거스히딩크가 왔다. 이 당시의 이미지는 '왠 듣보잡'이었지. 축구팬이 아닌 다음에 누군지 알게 뭐야. 그리고 9.11 테러로 미국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2002년 - 대한민국은 '월드컵'으로 하나가 되었다. 월드컵 4강. 다시 이룰 수 있는 꿈이려는지.

 

2003년 - 묻지마식 대구지하철참사로 온 나라가 울분에 쌓였다. 나라가 점차로 이상해져가고 있다. 그리고 장국영이 자살한 해이기도 하다.

 

2004년 -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동영상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져 온 나라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2007년 대흥행극 '추격자'의 모델이 된 연쇄 살인범 유영철이가 잡혔다.

 

2005년 -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은....

 

2006년 - 황우석 사건으로 나라가 한동안 뒤숭숭했다. 그리고 반기문 장관이 유엔사무총장이 된 국제적인 경사가 있었다.

 

2007년 - 미국 버지니아 총기난사 조승희가 핫이슈였다. 그 외로는 그닥 사건은 없고, 김형은, 유니, 정다빈, 송인득, 피천득, 파바로티 등이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2008냔 - 어떤 기록들이 역사로 남겨질 것인가?

 

 

 

Written by 나그네

by 나그네 | 2008/07/23 21:33 | ◈일상에서의생각 | 트랙백 | 덧글(0)

[놈놈놈] 세명의 주연, 각자의 포커스



토요일날 사촌 형과 동생이랑 느닷없이 '놈놈놈'을 보게 되었다. 아주 안습적인 상황이었는데...

적벽을 보자는 것을 이것은 우리 CAFE사람들과 보기로 했기에 놈놈놈을 보게 되었다는 것.

뭐, 본래 보고 싶기도 했던 영화다. 정우성이 너무 멋지게 나왔고, 이병헌의 변신이 어느정도인지, 송강호의 코믹스런 장면등이 어떻게 어우러져 버무려졌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한국적 웨스턴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이라고나 할까.

 

마카로니, 헐리우드 식의 웨스턴이 아닌 우리만의 웨스턴은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이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보고나서 느낀 것이라고는 '주연 3명의 영화는 안된다'라는 것이다. 이거 주연이 3명이나 되고, 그래서 각자 3명에게 각자의 포커스를 맞춰주다 보니 이야기가 끊기고 연결이 되지 않는다. 본래 '스토리' 보려고 가지도 않았다만 '스토리'가 맥없이 끊기면 안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영상의 힘? 글쎄다. 이 영화의 영상이 그리도 대단하던가 하는 생각은 참 눈물 나게 한다. 이 '영상'을 만들려고 '스토리'를 포기했다? 이건 아닌것 같은데. 하여간 '투탑' 영화는 볼만하겠지만 '쓰리톱'영화는 영 볼만한게 못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야기가 아주 7살 어린애처럼 정신 사납다.

 

 

좋은 놈 - 정우성

 

놈놈놈에서 정우성의 역할은? 딱 하나다. '간지'. 영화를 간지나게 하는 '포스터'다. 연기력은 어떻게 날이가고 해가 바뀌어도 '비트'의 정우성에서 변한게 없는지 가슴이 턱턱 막히게 한다. 그나마 기럭지와 얼굴, 그리고 옷 매무새가 '간지'다보니 영화에서도 오로지 '간지'나는 역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연기력보다는 외모로 놈놈놈에서 Feel나게 박혀있다.

 

그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왜 그를 김지운은 '좋은놈'이라고 평가를 했는지 알지를 못한다. 스스로 '나쁜 놈 잡으러 다니는 것이다'라고 말을 하고 다녀서 스스로 '좋은놈'이 되는 건지 내 알지를 못하는데 그는 나라에서 '현상수배'내린 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스스로 '좋은 놈'이다. 그러다보니 이병헌을 잡으러 다니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역할이 없다. 그에게서는 오로지 '간지 작살'이라는 표현 말고는 영화에서 딱히 하는 역할이 없다.

 

기차문을 부수면서 장총으로 한명씩 죽여나가는 모습은 포스터고, 말위에서 총을 돌려가며 원샷 원킬로 일본군을 죽이는 모습은 완전 '화보'다. 딱 그거다. 쇼윈도우의 멋진 마네킹이요 방 벽에 붙여있는 '멋진 포스터'가 바로 놈놈놈의 정우성이다.

 

 

나쁜 놈 - 이병헌

 

간지 정우성이면 이병헌은 '섬뜩'하다. 보는 내내 등골이 오싹거리고 상대를 고깃집 푸대 작살내듯 난자하는 모습은 스타일리쉬한 검객 오락을 보는 듯 하다. 그는 오직 '최고' 말고는 전혀 상관치 않는다. 그가 왜 도적질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를 못하겠는데 '최고'라는 타이틀때문에 도적질을 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어쩌면 그가 '최고'이기때문에 부하들이 몰려들어 도적단을 구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런 그의 모습은 부하 알기를 거의 '잡동사니'알듯 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는데 그는 굳이 부하를 관리하거나 아끼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관리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에 의문을 품는 부하는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라스트신에서 지도 가진 송강호를 쫓는 모습에서는 부하들이 일본군과 마적단에게 죽어나갈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죽든 말든 상관치 않고 송강호만 쫓는 모습에서는 '독고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송강호를 쫓는 이유는 오직 '최고'라는 타이틀때문이기도 한데 그 집착성에 대한 광끼가 놈놈놈을 가로지르는 이병현의 캐릭터가 된다. 이병헌의 옷 매무새 역시도 간지삘이 나기는 하는데 정우성만 못하다. 하지만 그의 연기력은 역시 정우성을 능가하고도 남는다고 할 수 있겠다.

 

보는 내내 이병헌의 연기력에 소름 끼치면서도 동시에 익숙함을 느끼는데 순간 든 생각은 '달콤한 인생'에서 보여준 이병헌의 모습과 유사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때보다 더 강렬해지기는 했지만 연기패턴은 비슷한 루트를 타고 간다고 여겨진다. 점차 레벨업을 해가는 배우라고나 할까.

 

 

이상한 놈 - 송강호

 

놈놈놈 주연을 보면서 느낀 것은 '송강호?'였다. 정우성, 이병헌에 비해서 '연기력'말고는 그다지 외모적으로 그네들에게 비교될만한 인물이 아니잖은가. 그것때문에 송강호가 조연급이 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예고편에서 보여지듯 송강호는 '간지'도 아니고 '섬뜩'도 아니다. 오직 '코믹'수준에서 놀고 있다. 예고편에서 총 쏘는데 발장난 하듯이 피하는 모습은 '만화잖아'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송강호가 왜 놈놈놈에 출연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놈놈놈의 주인공은 송강호다. 배우는 '연기력'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다라는 말이 여기에서 직접적으로 통용된다. 외모는 딸릴지언정 연기력으로 놈놈놈을 이끌어가고 그 중심을 잡아준다. 정우성처럼 간지나게 행동하지도 않고 이병헌처럼 섬뜩한 모습이 없음에도, 그리고 예고편에서 보여준 대로 '코믹함'으로 놈놈놈을 이끌어가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력은 놈놈놈을 장악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개의 영화에서는 진지한 두놈이 있고 한놈의 코믹한 놈이 있으면 코믹한 놈은 대개 '조연' 정도가 된다. 그런데 이 영화 진지한 두 놈이 조연이 되고 코믹한 한 놈이 원톱으로 영화를 이끈다. 이 영화의 성공여부는 오로지 송강호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 기세가 만만찮다. 내 생각컨데 이 기세 금방 수그러들지 않을까. 디워의 경우는 '우리영화 살리기'뭐 그런 것 때문에 800만을 넘은 것이니 제하기로 한다면 적어도 500만 넘고자 하면 '스토리'가 받쳐줘야 한다. 상반기의 500만 넘은 영화가 추격자인데 그 스토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영화를 이루는 구성요소를 배우의 연기력, 영상성, 스토리라고 따지면 스토리가 따르지 않으면 파죽지세가 되지 못한다. 연기력 되는 배우가 입지를 구성한다고 해도 영상이 떨어지고, 스토리가 안 받쳐 주는데 어찌 500만 운운하고 1000만 운운하는가. 그렇다면 천만관객 영화를 우롱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500만 안된다. 어찌 500만을 넘겠는가. 첫주에 200만 넘었다고 500만 넘는게 가능하리라 보는가. 이는 관객을 우습게 보는 것이지.

 

우선 못 넘는 것은 이준익의 '님은 먼곳에'가 대기하고 있다. 차라리 영화 관객수는 님은 먼곳에가 놈놈놈을 이길 것이라 본다. 그리고 헐리우드 대작 다크나이트가 8월 초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놈놈놈 이번주에 앗사리 400만을 넘겨야 500만을 넘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놈놈놈 마케팅은 실패한 것이 될 것이다.

 

스토리는 작살났고

배우들은 중구난방

영상화면 조족지혈

 

어찌 지속적인 흥행이 되겠는가? 초반 관객은 마케팅의 승리라 본다. 하지만 이후는 관객의 입소문에 달려있다. 영화 본 이들이 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말이다.

 

 

 

Written by 나그네

by 나그네 | 2008/07/21 15:32 | ◈느낌으로본영화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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